시간이 멈춘 듯한 북촌의 골목길,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서 웅장함을 자랑하는 백인제가옥을 다녀왔는데요.
한옥의 고즈넉함 속에 근대의 세련미가 스며든 이곳은 걷는 것만으로도 100년 전의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합니다.
1913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백인제가옥은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당시의 일본의 근대적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약 2,400㎡의 넓은 대지에 안채, 사랑채, 별당채가 어우러진 북촌 최고의 저택이자 최고급의 한옥이었습니다.
북촌 일대 대형한옥 중 당시 규모로 오늘날까지 남은 것은 백인제 가옥과 윤보선 가옥 두 채뿐이고,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있는 한옥은 백인제 가옥뿐입니다.
영화 '암살'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진 이곳,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 백인제 박사의 흔적이 남은 가회동 백인제가옥의 봄 풍경을 담았습니다.

백인제 가옥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대문으로 들어서서 계단을 올라야 하고, 중문과 일각문을 지나야 사랑채와 안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시 친일파였던 한상룡이라는 권위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의미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가회동에 있는 백인제가옥은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1913년 건립한 후 한성은행과 최선익을 거쳐, 1944년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이자 백병원의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1977년에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9년 백인제의 아내인 최경진이 서울시에 인도하며 2015년부터 공개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주인이었던 백인제의 이름을 따 문화재 이름도 정해진 것입니다.
백인제 가옥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30분 전 입장마감)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관람료(입장료) 무료
주차장 없음, 인근 유료주차장 이용
소요시간 10분~30분

백인제가옥 담장에 핀 봄꽃
당시 집주인이었던 한상룡은 주변 가옥 12채를 사들여 마련한 740여평 대지에 1907년 경성박람회 때 서울에 처음 소개된 압록강 흑송을 자재로 이용해 건축했다고 하는데요.
한상룡(1880~1947)은 일제강점기의 관료 및 금융인으로 조선총독부 참의와 고문을 지냈고, 매국노인 이완용과 이윤용이 그의 외삼촌이며, 그 역시 친일파의 집안 출신입니다.
이에 비해 백인제(1899~1953년 이후)는 평안북도 정주시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해 10개월을 옥살이를 했습니다.
1924년부터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진료를 봤고, 1928년에 도쿄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성의전 교수로 있으면서 독일 베를린대학교 의대에서 유학하기도 했습니다.
1941년에 백인제 외과의원을 개업, 해방 후 백병원을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사상전향을 하지 않아 수감되었다가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한국전쟁 이후 아들 백낙조와 조카 백낙환이 백병원을 다시 일으켜 서울백병원, 부산백병원, 상계백병원, 일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 순으로 개원했으며, 1979년에 인제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아울러 백인제의 유명한 수제자로 장기려 박사(1911~1995)가 있는데요.
장기려 박사는 고신대학교와 고신대 복음병원을 설립했고, 1977년 의무의료보험이 출현하기 이전에 청십자라는 임의 의료보험조합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입구에 있는 행랑채에는 백인제가옥에 대한 영상과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가회동 백인제가옥은 정독도서관 소담정 구내식당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가회동 골목으로 들어서다 보면 이렇게 좁은 곳에 고급 근대식 한옥주택이 있다는 게 다소 으아스럽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백인제 가옥은 기존 한옥과는 차별화된 포인트가 있습니다.
전통 한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이곳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신발을 벗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는 근대적 편리함을 갖췄습니다.
아울러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을 두었고,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많이 사용한 것은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했고, 안채 일부가 2층으로 지어져 있는데, 이는 조선 시대 한옥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입니다.

가회동 백인제가옥 사랑채
백인제 가옥이 전통한옥과 일제양식이 혼합된 근대한옥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뒤쪽에 안채가 있는데,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한옥에서 없었던 부분을 보여주고, 한지 창문이 아닌 유리창으로 꾸민 점도 근대한옥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인제가 거주 당시에는 백인제 부부와 자녀들 그리고 고용인들 20여 명 정도가 상주했다고 합니다.
백인제는 그의 부친과 서울에 연고가 없는 친척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방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이 사랑채는 응접실과 사랑방 여럿을 두었는데요.
주로 백인제가 사용했고 그의 아내 최경진과 자녀들, 아버지는 안채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안채 아래에 떨어진 방에는 친인척들이 묵었습니다.

사랑채 앞 정원엔 봄꽃이 피고 있습니다.
백인제는 여러 지인들과 이웃을 초대해 친목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외과의, 내과의 등 의료인뿐만 아니라 오산학교와의 인연을 통해 관계를 맺은 흥사단 사람들과도 자주 교류를 했습니다.
안창호, 서재필, 주요한 등을 비롯해 사회 각 계층 사람들과 교류하며 넓은 정원에서 가든파티를 했는데, 당시 신문기사에도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정원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
사랑채 뒤와 별당으로 이어진 길입니다.

박인제 가옥 제일 위에 있는 별당채
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별당채 역시 사방이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근대한옥 양식을 보여줍니다.

별당채에서 바라본 북촌한옥마을 모습
별당채에 오르면 앞으로 북촌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의 기와 처마 모습

안채 뒤쪽 모습
안채 오른쪽 끝부분에만 만들어진 2층 건물은 당시 근대한옥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안채의 옛날식 부엌 모습

안채 옆에 있는 별채

백인제가옥 안채 모습
가족들의 생활공간입니다.
백인제의 부인 최경진과 아이들은 안채 부엌 오른쪽 안방에서 생활했고, 부친 백희행은 안채 부엌 아랫방을 썼다고 합니다.
장녀는 치아노가 놓인 안채 건넌방, 장남은 사랑채와 연결된 아랫방을 사용했습니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사랑채와 연결된 복도가 있다고 하네요.

2층으로 이루어진 안채 모습
2층으로 올라가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 당시에는 가회동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조망권까지 갖춘 파격적인 설계였습니다.
안채에 2층을 둔 것은 전통적인 내외(안과 밖의 구분) 관념보다는 근대적인 공간 활용과 과시적인 건축미를 우선시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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