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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양화진 역사공원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by 해피이즈나우 2019.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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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역사공원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서울천주교 성지인 절두산순교성지절두산순교박물관을 구경하고 이동한 곳은 바로 옆에 있는 양화진공원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입니다.

 

서울 천주교성지, 절두산 순교성지

서울 천주교 순교성지, 절두산 성당과 절두산 순교박물관

 

 

양화진역사공원은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였고,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공동묘지입니다.

 

이곳도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전혀 모르고 살아왔네요.

양화진공원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화진역사공원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절두산 순교성지 옆에 있고, 지하철 2호선이 바로 옆에 지나가고 있습니다.

 

양화진 역사공원 모습인데요.

더운날씨에 그늘에만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몇 팀 보이는 정도입니다.

 

양화진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였다고 합니다.

영조 30년(1754)에는 한강수로의 경비를 수도를 방위하기 위해서 양화진에 군진이 설치되어 상비군을 주둔시켰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로 이곳을 양화진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군진 옛터의 일부를 장대석으로 구획해 놓은 모습입니다.

 

 

양화진 공원은 대중교통으로 합정역 7번출구로 나가면 양화정 정자와 CU간판이 보이는데 그 사잇길로 200여 미터 걸어가면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과 양화진 공원이 나옵니다.

 

차를 가지고가면 양화진 주차장이 있으므로 이곳에 주차하면 됩니다.

(망원한강공원 망원 1주차장을 이용해도 됨. 30분 1,000원, 추가 10분당 200원)

 

양화진공원의 양화진 주차장 5분당 100원, 1시간에 1,200원입니다.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80%, 경차 및 저공해차 등은 50% 할인됩니다.

 

공원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공원을 지나면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이 나옵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입장료 : 무료

관람시간 : 월~토 10:00 ~ 17:00

휴무일 : 일요일

 

느티나무 보호수와 그 옆에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재단 건물이 있고, 그 아래에 양화진 홍보관 100주년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인데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쪽에 양화진 홍보관과 100주년 기념교회, 양화진홀이 있는데요.

자유롭게 관람하면 됩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배치도 입니다.

 

1890년(고종 27) 미국 장로교 의료 선교사 존W.헤론이 사망하자 외국인들의 공동묘지로 양화진을 사용하도록 미국 공사가 건의하자 허용된 것이라고 합니다.

 

 

양화진에 묻힌 분들은 일제 암흑기 한민족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헌신한 분도 있고, 근대 병원을 설립하고 신분제와 남존여비 관습의 철폐와 같은 부분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던 분도 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의 무료안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월~토 10시, 11시 30분, 14시, 15시 30분

  (예약 신청서를 작성해서 무료 안내도 가능)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복음의 씨앗으로 헌신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안장되어 있는데요.

선교 200주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소중한 자산이자 밑거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양화진묘원에는 남아공, 미국, 스웨덴, 영군, 캐나다, 호주 등 6개국의 417명의 선교사가 안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베델의 묘

 

영국출신의 언론인으로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들어와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를 창간했다고 합니다.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로는 야욕이 보이자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호외까지 발행해 일본을 규탄하였다고 합니다.

 

베델은 일제의 미움을 받아 3주간의 금고형을 살았고, 37세 젊은 나이에 죽어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그는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훈하였습니다.

 

헐버트의 묘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이란 칭호를 받고 있는데요.

국립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5년을 지내다가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옵니다.

헐버트는 한국에 관한 글을 써서 외국에 알리는 창구가 되었고, 1903년 초대 YMCA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헐버트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며 외교 밀사를 마다하지 않았고, 한국의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 2014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엘리스 아펜젤러의 묘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아이로 평생을 한국여성이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고 합니다.

 

이화학당의 교사와 학당장으로 학교발전과 여성교육에 헌신했고, 1925년에 이화학당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교육기관인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켰습니다.

그리고 1939년 한국인 김활란 박사에게 학교장직을 물려줬다고 합니다.

 

외국인 관람객들도 단체로 와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이화여자대학교의 초석을 놓은 스승님들이 묻힌 묘원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턴

 

그리고 연세대학을 세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부부와 그의 아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 부부의 묘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와 그의 딸 앨리스 아펜젤러, 숭실대학 설립자 윌리엄 M. 베어드 등 417명의 유해가 안장 되어 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한국을 위해 노력한 외국인 선교사들, 저는 몇 개의 묘에 대해서만 설명을 해 드렸는데 각 묘 앞에는 업적들을 적어 놓은 비가 있으니 읽으면서 보면 유익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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