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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청와대 사랑채 기획전 '희망이 거니는 숲'(3대독립운동, 4대민주화운동)

by 휴식같은 친구 2020.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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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랑채 기획전 '희망이 거니는 숲'(3대독립운동, 4대민주화운동)

 

 

설 연휴 첫날에 칠궁과 청와대 사랑채 관람을 다녀왔는데요.

 

칠궁 관람 / 칠궁예약

 

청와대 사랑채, 서울 가볼만한 곳

 

청와대 사랑채 2층 로비에서는 독립운동과 민주항쟁을 조명하는 '희망이 거니는 숲'이라는 의미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 전시회는 독립운동과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국민의 아픔을 기억하고,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며 그 주역들을 재조명하여 국민과 함께 미래로 나가고자 마련되었다고 하는데요.

 

청와대 사랑채 기획전 '희망이 거니는 숲'을 스케치했습니다.

 

청와대 사랑채 기획전 '희망이 거니는 숲'이 열리는 청와대 사랑채 2층 로비 모습

 

전시에는 3대 독립운동3.1 운동과 6.10 만세운동, 11.3 학생독립운동

그리고 4대 민주화운동4.19 민주혁명, 10.16 부마 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등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청와대 사랑채 기획전 '희망이 거니는 숲' 전시는 전시는 지난 12월 5일 개막하여 1월까지 자유롭게 누구나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3대 독립운동인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

 

2019년은 근대 한국민주주의 운동의 뿌리인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100년 전 3월 1일, 일본의 잔혹한 총살에도 굴하지 않고 비폭력 평화의지를 담아 우리나라는 독립한 나라이며 한국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33인의 민족대표들은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가던 우리 민족에게 희망의 빛을 전해준 3.1 독립선언서에 독립의 의지를 담아 서명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과 세계평화, 인권과 정의라는 가치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1926년 6.10 만세운동

 

1926년 6월 10일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의 인산일을 맞아 전문학교와 중등학교 등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입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성향의 학생들이 주도한 운동으로 당시 극심한 이념적 분열을 보이던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에 강력한 통합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이로써 민족대당 촉성운동, 유일당 운동, 신간회 탄생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929년 11.3 학생독립운동

 

11.3 학생독립운동은 민족차별과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벌였던 항일독립운동입니다.

3.1 운동, 6.10 만세운동과 더불어 3대 항일독립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광주 간 호남선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이 한인 여학생을 희롱하면서 발생한 한일 학생 간의 충돌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일방적인 한인학생 탄압을 계기로 민족감정으로 번졌고, 11월 3일 광주고보(광주일고)와 광주농업고(자연과학고)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학생시위운동으로 확대되어 전국적인 항일 독립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전국 320여 개 학교의 54,0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당시 학생 절반이 참여했고, 1,600여 명이 구속되었답니다.

 

1960년 2.28 민주운동, 3.8 민주의거, 3.15 의거, 4.19 혁명

 

4.19 혁명은 학생과 시민이 주축이 되어 부정선거와 부패 권력에 대해 자발적으로 봉기한 민주주의 저항운동입니다.

 

3.15 의거는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3.8 민주의거는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정과 부패, 불법적 인권유린에 대항하여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이 민주와 자유, 정의를 위한 열정으로 불의에 항거한 민주운동입니다.

 

2.28 민주운동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1979년 6.10 부마항쟁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의 시민과 학생들이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하여 펼친 민주화운동입니다.

 

1970년대 유신체제의 폭압 속에서 시민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사실상 유신독재의 붕괴를 아래로부터 촉발한 대한민국 역사의 결정적 장면이었습니다.

 

1979년 10월 부마와 1980년 5월 광주는 모두 군부독재에 저항에서 출발한 사건으로, 마침내 1987년 6월 전국적인 규모로 군부독재를 이 땅에서 영원히 몰아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27일까지 10일 동안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에 맞서 광주. 전남 도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역사적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항쟁기간인 22~26일, 계엄군이 물러간 이후 시민들은 주먹밥과 빵 등을 대가 없이 나눴으며 부상자를 돕기 위해 헌혈을 하는 등 세계사에서 유래가 드문 자치공동체를 실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5.18은 1987년 6월 항쟁의 동력이 되어 민주주의 쟁취와 인권회복으로 이어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5.18은 진상규명을 위한 끈질긴 투쟁으로 1996년에 국가가 기념하는 민주화운동으로, 2001년에는 피해자가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되어 명예를 회복하였습니다.

2011년 5월, 불의의 국가권력에 저항했던 5.18의 기록물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습니다.

 

1987년 6.10 민주항쟁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민주항쟁으로 6월 민주화운동, 6.10 민주화 전국대항쟁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해 전두환 정권은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고,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등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억압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하였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6월 항쟁의 지렛대 역할을 하였습니다.

 

명동성당 농성투쟁, 최루탄 추방대회, 민주헌법쟁취 대행진에 이르기까지 20여 일간 전국적으로 5백만 명이 참가하여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습니다.

 

이제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민주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어 민정당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부이양, 대통령선거법 개정, 김대중의 사면복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 유화조치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과 민주화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투쟁과 희생으로 만들어 낸 우리 대한민국을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독립과 민주화에 대해서 한번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전시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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