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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이야기

by 해피이즈나우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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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이야기



조선왕릉은 519년 동안 지속된 조선시대 역대 27명의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18개 지역에 40기가 있습니다.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북한에 있는 2기의 조선왕릉은 제외되었습니다.

조선왕릉은 519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한 왕조가 지속된 사례도 드문 데다가 역대 왕과 왕비의 무덤이 모두 남아 있는 경우도 유례가 드물다고 합니다.
유교와 풍수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압축된 장묘문화의 공간으로서 왕실의 장례 및 제례 등을 조명할 수 있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풍부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시대 27명의 조선왕릉 이야기입니다.
남한에 있는 대부분의 조선왕릉은 다녀왔으며 다녀온 글은 별도로 링크를 달아 놨으니,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마지막 왕이면서 대한제국 2대 황제인 순조의 유릉

조선왕릉은 왕릉이 42기, 원이 14기, 묘가 64기에 이릅니다.
왕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 은 세자와 세자빈, 후궁의 무덤, 는 폐위된 왕, 그 외 왕족의 무덤을 말합니다.

 

조선왕릉은 조선왕실의 의례서인 국조오례의에 근거하여 조성되었습니다.

국조오례의에는 왕과 왕후를 하나의 봉분에 안장한 합장릉을 기본으로 했으나 왕릉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조선왕릉의 무덤 형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릉은 왕이나 왕비 한 분만 모셔진 무덤, 쌍릉은 왕과 왕비 두 분을 이웃해서 모신 무덤, 동원이강릉은 같은 장소에 산줄기를 따로 해서 모신 무덤, 동원상하릉은 위아래에 모신 무덤, 합장릉은 두 분을 한 무덤에 모신 무덤, 삼연릉은 왕과 왕비 두분 등 세 분을 따로 나란히 모신 무덤입니다.

 

조선왕릉 분포도

남한에 있는 조선왕릉은 총 40기로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양주의 온릉, 김포의 장릉, 파주의 장릉과 삼릉, 고양의 서오릉과 서삼릉, 서울의 태강릉과 선정릉, 정릉, 헌인릉, 의릉, 구리의 동구릉, 남양주의 사릉과 홍유릉, 광릉, 여주의 영릉과 영릉, 화성의 융건릉, 영월의 장릉 등입니다.
군으로 강등된 연산군묘와 광해군묘는 제외된 내역입니다.

 


조선왕릉의 형태, 분포, 배치도, 건축물 구조도 등 조선왕릉 총정리 내용은 앞서 적은 다음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선왕릉 총정리 (분포, 구성, 관람안내)

 

 

그럼 조선시대 1대왕부터 27대 왕까지의 조선왕릉을 알아보겠습니다.
위 사진들은 남양주 홍유릉의 덕혜옹주묘로 가는 길에 전시된 조선왕릉 전시내용을 찍은 사진입니다.

 

조선 제1대 왕(임금), 태조의 조선왕릉 - 구리 동구릉, 건원릉

 

조선 1대 임금 태조의 능으로 단릉니다.
태조는 생전에 계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에 묏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나, 태종은 부왕의 명에 따르지 않고 신덕왕후의 능을 도성 밖으로 이장하고, 지금의 구리 동구릉에 조성했습니다.
고려왕릉 중 가장 화려하고 잘 정비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정릉 양식을 따랐으며, 이후 조선왕릉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건원릉은 특이하게도 봉분에 잔디가 아닌 억새를 심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태종이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봉분을 덮어줬기 때문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첫 번째 왕비인 신의왕후는 북한 제릉에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했고, 둘째 왕비인 신덕왕후의 능은 서울 정릉에 있습니다.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정릉, 태조의 비 신덕왕후의 조선왕릉

 

조선 제2대 왕(임금), 정종의 조선왕릉 - 북한 후릉

 

조선 2대 임금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으로 쌍릉입니다.
1412년(태종 12) 6월 25일 정안왕후가 승하하여 안장되었고, 7년 뒤 정종이 승하하자 조선왕릉 가운데 최초로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연결하여 쌍릉을 이루었습니다.


고려 공민왕릉의 형식을 따라 12면의 병풍석을 두르고 석마를 동원한 문석인과 무인석을 2쌍씩 배치하였습니다.
후릉은 북한 개성시 판문군에 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은 조선왕릉 2기 중 하나입니다.

 

조선 제3대 왕(임금), 태종의 조선왕릉 - 서울 헌인릉, 헌릉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쌍릉 형식입니다.
헌릉의 능 앞 석물들은 망주석만 빼고 모두 두 쌍씩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왕조의 현릉과 정릉제도를 기본으로 했다고 합니다.

헌릉에는 제례의 마지막 절차로 지방을 불태울 때 쓰던 소전대가 남아있고, 봉분 앞 상석 아래 놓인 고석의 개수가 5개로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상설제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조선왕릉] 헌인릉, 태종 이방원의 헌릉과 순조의 인릉

 

조선 제4대 왕(임금), 세종의 조선왕릉 - 여주 영릉

조선 4대 임금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으로 합장릉입니다.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서울시 내곡동) 헌릉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성했습니다.
이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었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했습니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실현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여주로 옮겼으며, 합장릉 형태입니다.

세종대왕릉의 영릉과 효종대왕릉의 영릉, 여주 영녕릉

 

조선 제5대 왕(임금), 문종의 조선왕릉 - 구리 동구릉, 현릉

조선 5대 임금 문종과 왕비 현덕왕후의 능으로 동원이강릉입니다.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위 언덕에 있는 능이 문종의 능이고, 오른쪽 언덕에 있는 능이 현덕왕후의 능입니다.
홍살문을 비롯하여 정자각, 비각 등을 하나만 만들어놓아 이 능이 동원이강릉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조선 제6대 왕(임금), 단종의 조선왕릉 - 영월 장릉

조선 5대 임금 문종의 단릉으로 1457년(세조 3) 단종이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둔 뒤 시신은 영월 동강에 버려졌습니다.
충성심 강한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동을지산 기슭에 암매장한 뒤 59년이 지난 1516년(중종 11)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묘를 찾아 지금의 봉분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1580년(선조 13)에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을 세웠고, 1698년(숙종 24) 단종의 신위를 모심과 동시에 이곳의 능호를 장릉이라 했습니다.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는 남양주 사릉에 단릉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왕릉] 조선 6대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릉, 사릉과 사릉역사문화관

 

조선 제7대 왕(임금), 세조의 조선왕릉 - 남양주 광릉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왕비 정희왕후의 능으로 동원이강릉입니다.
1468년(예종 1) 주엽산 아래 세조를 예장하고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483년(성종 14)에 정희왕후가 승하하자 광릉 동쪽 언덕에 예장했습니다.

세조의 유언에 따라 병풍석을 없애고 석실을 회격을 바꾸는 등 검소하게 만들었으며 이후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고 합니다.
좌측 능선의 봉분이 세조의 능이며, 오른쪽 봉분이 정희왕후의 능입니다.

 

조선 제8대 왕(임금), 예종의 조선왕릉 - 고양 서오릉, 창릉

조선 8대 임금 예종과 왕비 안순왕후의 능으로 동원이강릉입니다.
효성이 지극했던 예종은 부왕 세조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1498년(예종 2), 20세의 나이에 승하했습니다.

1498년(연산군 4)에 안순왕후가 승하하여 창릉에 안장됐습니다.
정자가 뒤로 예종의 능이고, 오른쪽이 안순왕후의 능입니다.

 

 

 

예종의 둘째 왕비인 장순왕후의 능파주 삼릉, 공릉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고양 서오릉(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파주 삼릉(공릉, 순릉, 영릉), 한명회의 권세를 느끼다

 

 

세조의 아들이며, 성종의 아버지덕종은 1455년(세조 1)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병으로 20세에 죽었습니다.

아들인 자을산군이 성종으로 즉위하자 덕종으로 추존되었으며, 소혜왕후와 함께 고양 서오릉, 경릉에 안장되었습니다.

 

고양 서오릉(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조선 제9대 왕(임금), 성종의 조선왕릉 - 서울 선정릉, 선릉

조선 9대 임금 성종과 왕비 정현왕후의 능으로 동원이강릉입니다.
성종은 추존된 덕종과 소혜왕후의 아들로 태어난지 두 달 만에 부친을 여의였습니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이 즉위 1년 만에 승하하자 정희왕후의 명으로 1469년 왕위에 올라 태조 이후 닦아온 모든 체제와 기반을 완성시켜 조선 초기의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성종의 둘째 왕비인 공혜왕후의 능파주 삼릉, 순릉에 있습니다.

 

파주 삼릉(공릉, 순릉, 영릉), 한명회의 권세를 느끼다

 

조선 제10대 왕(임금), 연산군의 무덤 - 연산군묘

선 10대 임금 연산군과 폐비 신씨의 무덤입니다.
연산군은 성종의 큰아들로 성종 7년(1476)에 태어나 1494년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두 번이나 사화를 일으키며 광폭함이 드러나자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나 1506년 왕직을 박탈당하고 연산군으로 강봉되어 강화 교동으로 추방되었다가 승하했습니다.

도봉구 방학동의 이 묘역은 능성 구씨의 사위의 선영으로 연산군의 딸과 사위도 이곳에 묵혀 있고, 폐비 신씨도 1537년(중종 32) 연산군묘 옆에 묻혀 쌍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연산군 부부 묘는 대군의 예우로 장례하기 위해 곡장과 장명 등 혼유석 등의 석물과 비석이 있습니다.

 

조선 제11대 왕(임금), 중종의 조선왕릉 - 서울 선정릉, 정릉

조선 8대 임금 중종의 능으로 단릉입니다.
정릉은 원래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의 오른쪽 언덕에 있다가 문정왕후 윤씨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조선왕릉 중 왕만 단독으로 있는 무덤은 후대에 왕릉이 된 단종의 장릉을 제외하고는 태조의 건원릉과 중종의 정릉뿐입니다.

 

 

중종은 성종의 둘째로 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졌고,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낸 뒤 왕이 되었습니다.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새로운 왕도정치를 실현하려고 했으나 당파논쟁으로 조정이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첫째 왕비인 단경왕후의 능 양주 온릉, 둘째 왕비 장경왕후고양 서삼릉, 희릉에, 셋째 왕비 문정왕후서울 태강릉, 태릉에 모셔져 있습니다.

고양 가볼만한 곳, 고양 서삼릉(희릉, 예릉, 효릉)

고양 가볼만한 곳, 고양 서삼릉(희릉, 예릉, 효릉)

조선왕릉 태릉·강릉(태강릉)

 

조선 제12대 왕(임금), 인종의 조선왕릉 - 고양 서삼릉, 효릉

조선 12대 임금 인종과 왕비 인성왕후의 능으로 쌍릉입니다.
인종이 먼저 승하하자 인성왕후는 자신도 인조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 능을 조영할 때 왼쪽에 왕비릉 자리를 비워놓았습니다.

난간석으로 인조의 능과 인성왕후의 능을 연결하였고 인종의 능에는 병풍석을 세웠으나 인성왕후의 능은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둘렀습니다.

고양 가볼만한 곳, 고양 서삼릉(희릉, 예릉, 효릉)

 

조선 제13대 왕(임금), 명종의 조선왕릉 - 서울 태강릉, 강릉

조선 13대 임금 명종과 왕비 인순왕후의 능으로 쌍릉입니다.
명종은 유일한 아들이었던 순회세자를 잃고 2년 후에 어머니 문정왕후도 여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병약했던 명종이 34세의 나이로 1567년 승하하자 태릉에 안장되었고, 8년 후인 1575년(선조 8)에 명종의 비 인순왕후가 승하하자 강릉 옆에 쌍릉으로 조성했습니다.

조선왕릉 태릉·강릉(태강릉)

 

조선 제14대 왕(임금), 선조의 조선왕릉 - 구리 동구릉, 목릉

조선 14대 임금 선조와 왕비 의인왕후, 그리고 그의 비 인목왕후의 능으로 동원이강릉입니다.
선조는 중종의 7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하성군에 봉해졌다가 명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1567년 즉위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선조는 전후 복구작업에 힘을 기울였으나 거듭된 흉년과 정치 불안정으로 큰 성과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조선 제15대 왕(임금), 광해군의 무덤 - 광해군묘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과 그의 부인 분성군부인 유씨의 무덤으로 쌍분입니다.
광해군은 조선시대 두 번째 폐위된 왕으로 제주도로 유배를 갔으며 그곳에서 67세에 세상울 떠났습니다.
어머니 발치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제주도에서 남양주 진접읍에 위치한 곳에 묘소가 옮겨졌고, 건너다 보이는 곳에 어머니 묘소인 성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조의 아버지,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김포 장릉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포 장릉은 왕위에 오른 왕릉이 아니라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 정원군의 묘소가 묘에서 원으로, 원에서 능으로 조선시대 최초로 승격된 조선왕릉입니다

 

인조의 아버지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 김포 장릉 나들이

 

조선 제16대 왕(임금), 인조의 조선왕릉 - 파주 장릉

조선 16대 임금 인조와 왕비 인렬왕후의 능으로 합장릉입니다.
1635년(인조 13) 인렬왕후가 승하하자 장릉이라 하여 조성하였고, 인조는 미리 오른쪽에 능을 마련해 두었다가 승하 후 그곳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후에 화재가 일어나고 뱀과 전갈이 능 주위로 무리를 이루고 석물 틈에 집을 짓는 등 이변이 계속되자 1731년(영조 7)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인조의 둘째 왕비인 장렬왕후의 능구리 동구릉, 휘릉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조선 16대왕 인조와 인열왕후의 조선왕릉, 파주 장릉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조선 제17대 왕(임금), 효종의 조선왕릉 - 여주 영릉

조선 17대 임금 효종과 왕비 인선왕후의 능으로 동원상하릉입니다.
풍수지리적 이유로 왕과 왕비의 릉을 좌우로 놓지 않고 위아래 상하릉으로 조성했습니다.
동원상하릉은 영릉이 최초이며, 영릉의 재실은 현존하는 재실 중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어 보물 153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세종대왕릉의 영릉과 효종대왕릉의 영릉, 여주 영녕릉

 

조선 제18대 왕(임금), 현종의 조선왕릉 - 구리 동구릉, 숭릉

조선 18대 임금 현종과 왕비 명성왕후의 능으로 쌍릉입니다.

왕릉과 왕비릉 모두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으로 연결되었고, 능침 앞에 혼유석이 하나씩 있습니다.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조선 제19대 왕(임금), 숙종의 조선왕릉 - 고양 서오릉, 명릉

조선 19대 임금 숙종과 첫 번째 왕비 인현왕후, 두 번째 왕비 인원왕후의 능으로 숙종과 인현왕후능은 쌍릉, 인원왕후의 능은 동원이강릉입니다.

보통 우상좌하의 원칙에 따라 동원이강릉의 오른쪽 언덕을 왕이 차지하는 일반적인 왕릉과 달리 명릉에서 가장 낮은 서열의 인원왕후의 능이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숙종의 셋째 왕비인 인경왕후의 능 고양 서오릉, 익릉입니다.

 

고양 서오릉(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조선 제20대 왕(임금), 경종의 조선왕릉 - 서울 의릉

조선 20대 임금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의 능으로 동원상하릉입니다.

위쪽의 경종의 능침에만 곡장을 둘렀고, 왕릉과 왕후릉 모두 혼유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석물은 별도로 배치했습니다.

 

이런 배치는 능혈의 폭이 좁아 왕성한 생기가 흐르는 정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풍수지리적 이유이고, 자연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으며 농원을 조성하려는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경종의 첫째 왕비인 단의왕후의 능구리 동구릉, 혜릉입니다.

 

조선 20대 임금(왕), 경종의 조선왕릉, 서울 의릉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조선 제21대 왕(임금), 영조의 조선왕릉 - 구리 동구릉, 원릉

조선 21대 임금 영조와 왕비 정순왕후의 능으로 쌍릉입니다.

무려 52년 동안 재위하며 8차례에 걸쳐 산릉원을 조성하거나 천장하는 등 산릉제도에 관심이 큰 왕이었다고 합니다.

 

원비 정성왕후가 잠든 서오릉의 고양 서오릉의 홍릉을 자신의 자리로 정해 쌍릉으로 조영하기를 바랬으나 손자인 정조는 건원릉 서쪽 두 번째 산줄기에 그를 안장하고 원릉이라 했습니다.

 

원릉을 조성한지 29년이 지난 1805년(순조 5)에는 61세의 나이로 승하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를 원릉 옆에 모셨습니다.

 

 

 

영조의 둘째 왕비인 정성왕후의 능고양 서오릉, 홍릉에 모셔져 있습니다.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고양 서오릉(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영조의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는 둘째 아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양아들로 들어갔으며,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추존 진종이 되었고, 그의 능은 효순왕후와 함께 파주 삼릉, 영릉에 안장되었습니다.

 

파주 삼릉(공릉, 순릉, 영릉), 한명회의 권세를 느끼다

 

그리고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었으며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추존 장조가 되었고, 헌경왕후와 함께 화성 융건릉, 융릉에 안장되었습니다.

 

조선 제22대 왕(임금), 정조의 조선왕릉 - 화성 융건릉, 건릉

조선 22대 임금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의 능으로 합장릉입니다.

1800년 정조사 49세로 승하하자 유언대로 아버지 능인 현륭원(융릉)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안장됐습니다.

 

21년 후인 1821년(순조 21)에 효의왕후가 승하하자 기존 자리가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 하여 정조의 능을 현 위치인 현륭 서쪽 언덕에 이장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해서 건릉이 되었습니다. 

 

조선 제22대 왕(임금), 순조의 조선왕릉 - 서울 헌인릉, 인릉

조선 23대 임금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의 능으로 합장릉입니다.

순조는 1834년 승하하여 파주 교하 구후 장릉에 안장하였고, 능호를 인릉이라 하였으나 풍수지리상 불길론이 대두되어 1856년(철종 7) 현재 위치인 내곡동 헌릉 서쪽 언덕으로 천장 되었습니다.

1857년 순원왕후가 승하하여 인흥에 합장하였고, 겉으로 보아서는 혼유석 하나만 설치하여 단릉과 같은 형식입니다.

 

[조선왕릉] 헌인릉, 태종 이방원의 헌릉과 순조의 인릉

 

 

 

효명세자 순조의 아들로 3년 3개월 동안 대리청정이 임하면서 조선을 경영했던 실질적인 왕이 된 인물로 결국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고, 그의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문조로 추존되어 신정왕후와 함께 구리 동구릉, 수릉에 안장되었습니다.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조선 제24대 왕(임금), 헌종의 조선왕릉 - 구리 동구릉, 경릉

조선 24대 임금 헌종과 왕비 효현왕후, 비 효정왕후의 능으로 조선왕릉 중 유일한 삼연릉입니다.

제일 우측이 헌종, 가운데가 효현왕후, 좌측이 계비 효정왕후의 능침입니다.

이는 우왕좌비의 원칙을 따르는 중국과는 다르게 배치하여 조선왕릉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리 동구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조선 제25대 왕(임금), 철종의 조선왕릉 - 고양 서삼릉, 예릉

조선 25대 임금 철종과 왕비 철인왕후의 능으로 쌍릉입니다.

조선시대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 국조상례보편에 의거한 상설제도로서의 마지막 능이라고 합니다.

(이후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의 묘를 따름)

 

봉분은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쌍릉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릉은 하계 앞 강이 길며 장명등을 중계가 아닌 하계의 끝에 배치한 것이 특이한데 이는 조선시대 우일한 배치방법이라고 합니다.

 

고양 가볼만한 곳, 고양 서삼릉(희릉, 예릉, 효릉)

 

조선 제26대 왕(임금), 고종의 조선왕릉 - 남양주 홍유릉, 홍릉

(대한제국 1대 황제)

조선 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과 왕비 명성왕후의 능으로 합장릉입니다.

조선말기에 조성한 왕릉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황제릉의 양식에 따라 명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떠 조영하였습니다.

 

능침의 삼계를 없애고 석물을 침전의 앞으로 배치하고, 정자각 대신 일자형 건물의 침전을 세웠으며, 금천교 안쪽 좌측에 일반 재실보다 규모가 큰 재궁이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조선 26대, 27대왕 고종과 순조의 조선왕릉, 홍유릉

 

조선 제27대 왕(임금), 순종의 조선왕릉 - 남양주 홍유릉, 유릉
(대한제국 2대 황제)


조선 27대 임금이자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인 순종과 왕비 순명효황후, 그의 비 순정효황후의 능으로 조선왕릉 중 한 능침에 세 명의 수장자를 합장한 유일한 동봉삼실릉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릉처럼 보이나 그 아래 순종과 그의 두 왕비가 잠들어 있는 것이죠.

 

홍릉과 같은 황제릉 양식으로 조성하여 장자각 대신 침전이 자리하고, 기린, 낙타, 코끼리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형태의 석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홍릉에 비해 능역 규모가 좁지만, 문무석인을 비롯하여 전체 석물의 조각은 홍릉의 것 보다 사실적이면서 뛰어난 가업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선 26대, 27대왕 고종과 순조의 조선왕릉, 홍유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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