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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행주산성 충장사와 대첩기념관

해피이즈나우 2025. 5. 27. 05:00

행주산성은 고양시 덕양구 덕양산의 7, 8부 능선에 쌓은 내성의 석성과 외성의 토성을 말하는데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정략적 요충지라는 점에서 삼국시대부터 산성을 쌓은 곳입니다.

 

조선시대 중기인 1593년 2월 12일(음력), 임진왜란 당시에는 권율 장군을 비롯하여 관군과 승군, 부녀자들까지 합세한 3,000여 명이 3만 대군의 일본군을 맞아 치열하게 싸워 이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을 일군 곳이기도 합니다.

 

행주산성에는 권율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2개의 행주대첩비를 비롯하여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 행주대첩의 유물전시관인 대첩기념관, 행주산성에 구축된 것을 복원한 토성과 석성, 영상교육관인 충의정, 전망좋은 곳에서 쉴 수 있는 덕양정과 진강정, 그리고 고양시와 김포시, 서울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등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행주대첩 승전지, 행주산성

 

이중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 행주대첩의 유물전시관인 대첩기념관 모습을 별도로 자세히 포스팅했습니다.

 

행주산성 입구인 대첩비를 지나 2~3분 오르면 우측의 홍살문을 통해 들어가면 행주산성 충장사가 있습니다.

 

충장사는 권율 장군(도원수)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0년 건립한 것입니다.

매년 임진왜란 행주대첩일인 3월 14일(당시 음력 2월 12일)에는 고양시에서 주최하는 행주대첩 제전행사가 진행되는 곳입니다.

 


권율 장군 사당은 이전 1842년 조선 헌종 때 현재의 행주서원 자리에 지은 ‘기공사’가 있었는데요. 

 

그러나 전란 등으로 무너져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행주산성 정화사업으로 행주산성 내에 새로이 ‘충장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건립하였고 이후 기공사도 예전 자리에 복원하였고, 행주서원이란 이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행주대첩의 명장, 권율 장군의 행주서원(지)

 

충장사 들어가는 길이 신록이 무성해서 기분도 무척 좋아지는 풍경입니다.

 

정상에 있는 행주대첩비(초건비)에 적힌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도삼문

 

궁궐이나 사당, 서원, 향교 등에서 볼 수 있는 삼도는 신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참도를 두고 있는데요.

들어갈 때에는 오른쪽으로, 나올 때에는 왼쪽으로 나오는 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신도는 사당에 모셔진 신이 다니는 곳으로, 일반인이 오갈 수 없고, 부득이 넘어가게 될 경우엔 모리를 숙여 예를 갖추고 넘어가야 된다고 합니다.

 

목백일홍

 

권율 장군 영정이 모셔져 있는 충장사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입니다. 

 

권율 장군 표준영정

 

표준영정은 문화체육부장관이 한국사 역대 위인들의 용모를 표준으로 지정한 초상화를 말하는데요.

권율 장군의 구 영정은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렸던 갑주본의 모습이었으나, 1998년 도난당해 복사본으로 대체하여 봉안 중이었다고 합니다.

 

 

고양시에서는 권율 장군의 표준영정 제작을 추진하면서 역사적 고증을 근거로 현재의 표준영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2022년도에 최종승인 후 행주대첩 430주년이었던 2023년 정부표준영정으로 지정했습니다.

 

2023년 3월 14일 430주년 행주대첩제를 진행하면서 표준영정이 봉행된 곳입니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2월 12일, 권율 장군이 조방장 조경과 승장 처영 등 정병 2300명과 함께 행주 덕양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하루 동안 왜군의 7번의 공격을 막아내며 대승을 거둔 전투입니다.

 

충장사 아래쪽 미개방 구간에 있는 전각은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네요.

덕양산 행주산성 정상부에 있는 행주대첩비와 덕양정에서 내려오면 대첩기념관이 있습니다.

 

대첩기념관은 행주대첩 당시 무기고와 군량창고가 있던 곳에 1980년 유물전시관으로 개관한 곳입니다.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화차, 신기전(기), 총통(기) 등 당시 최첨단 무기들과 대첩기록화, 대첩비문 탁본, 권율 도원수 친필, 기타 산성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행주대첩과 권율 도원수(장군)에 관한 미디어 파사드가 상영하고 있습니다.

 

대첩기념관 아페 전시 중인 당시의 무기들

 

변이중 화차 외부와 내부 모습

 

임진왜란 중 행주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 변이중 화차는 수레의 구조가 일반 수레와 같이 차체가 바퀴 측 위에 바로 올려져 있고, 네 방향의 방호벽과 세 방향의 총통기를 달은 모습입니다,.

 

어느 화차보다도 탁월한 공격력과 방호력을 구비한 변이중의 화차는 300여대가 제작되어 그중 40대를 행주산성 전투에 지원했다고 합니다.

 

신기전

 

1448년(세종 30년) 제작된 병기로 고려 말기에 최무선이 화약국에서 제조한 로켓형 화기인 주화를 개량한 것입니다.
대신기전, 산화신기전, 중신기전, 소신기전 등의 여러 종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로켓 무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칠전칠승 신호지세

굶주린 새벽의 호랑이와 같은 맹렬한 기세로 7번 싸워 7번 이겼다.

 

대첩기념관 입구에 크게 걸려 있는데, 행주대첩을 한마디로 표현한 글이라고 보면 됩니다.

 

행주대첩, 1593년 2월 12일, 가장 치열했던 그날로 돌아가다.

권율 장군,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지친 병사들에게 물과 미음을 주며 도망치는 병사는 참수하고 선두에 서서 싸우는 병사에겐 사기를 높였다.

중궁장 조경, 행주산성을 발견한 인물로 권율 장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목책을 이중으로 설치하고 진흙을 바름으로써 행주대첩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행주대첩도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의 치열한 전투현장을 담아낸 문학진 작가의 기록화입니다.

 

행주대첩 당시 사용한 조선의 신무기, 비격진천뢰

 

조선 선조 때의 무기제조 기술자인 이장손이 발명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한폭탄입니다.

촉발할 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점화 후 바로 폭발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폭발한 탓에 일본군은 귀신폭탄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폭발 시 무쇠 탄환이 두세 조각으로 깨지며 내부에 있는 쇳조각이 사방으로 날아가 살상력이 뛰어난 무기였습니다.

 

천자총통

 

조선시대 화포인 총통은 크기에 다라 천자문의 천, 지, 현, 황 순으로 이름이 붙는데, 천자총통은 조선군이 사용하던 화포 중 가장 큰 대형화포를 말합니다.

사거리가 1,200보에 이르러 주로 해전에서 왜선을 격파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칠전칠승 신호지세의 행주대첩 미디어 파사드

 

6분 분량으로 영상이 나오니 한 번 보면 행주대첩과 권율 장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과 권율 장군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가는데요.

양상을 요약한 내용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행주산성의 행주대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