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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천주교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관

by 해피이즈나우 2019.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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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관

 

 

조선시대 사형장이었던 새남터에 지어진 새남터 성당.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새남터 순교성지와 새남터 기념성당

 

 

새남터 성당 지하에는 새남터 순교성지 기념관이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한 4대 박해와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인 아홉분의 성인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죠.

 

천주교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관 모습입니다.

 

기념관 관람시간은 10:00 ~ 17:00

휴관일은 없는 듯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람요금은 무료이나 순례객들의 정성어린 헌금으로 대채하고 있습니다.

주차장은 새남터 성당에 하면 됩니다.

 

다만, 기념관 및 성지 안내를 원하는 단체관람객은 사전예약을 해야 한답니다.

 

한양도성 밖 한강변에 위치한 새남터는 노들 혹은 사남기로 불리웠고,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과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랍니다.

 

1456년(세조 2) 성삼문 등 사육신을 처형한 곳도 이곳이라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 중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순교당하고, 천주교회 4대박해인 신유, 기해, 병오,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김대건 성인을 비롯하여 초대교회 성직자와 평신도 등 수많은 지도자층 신앙인들이 순교의 성형을 뿌림으로써 11명의 성인을 탄생시킨 영광의 땅이라고 합니다.

 

 

순교성지 새남터 성당에는 2006년 지하 전시관을 개관하고 새남터에서 순교한 9위와 타지역에서 순교한 5위의 성인유해를 모시고 있답니다.

 

전시관 내에는 천주교 박해를 한 4대 박해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4대 박해 : 1) 신유박해

 

신유박해는 1801년(순조 1)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의 금교령으로 시작한 조선시대 최초의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박해입니다.

 

주문모 신부의 입국으로 신자가 1만 명에 달했는데, 한국은 초대교회의 지도자 전원을 잃고, 서울에서만 300명이 넘게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첫 사목사제로 입국한 주문모 신부도 순교하여 33년간 목자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천주교 4대 박해 : 2) 기해박해

 

기해박해는 1839년(헌종 5) 우의정 이지연이 순정왕후의 재가를 받은 사학통치령으로 시작한 두 번째 박해입니다.

이 때 희생된 순교자 중 70위가 103위 한국순교 성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주교에 대해 관용적인던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36년간 계속되다가 우의정 이지연이 풍양조씨와 손잡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가져오기 위해 천주교 박해를 시작한 것입니다.

 

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와 그 뒤 사제를 잃고, 이후 김대건 신부가 입국할 때까지 6년간 목자없는 교회가 다시 됩니다.

 

상제상서로 유명한 정하상, 조신철, 유진길 등 제2세대 지도자들을 모두 상실하게 되었네요.

 

천주교 4대 박해 : 3) 병오박해

 

병오박해는 1846년(헌종 12)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피체를 계기로 시작된 세 번째 박해입니다.

이 병오박해로 사제 김대건과 현석문 등 9명이 순교성인으로 한국 순교 103위 순교성인인 중에 들어있습니다.

 

기해박해 이후 육로 경비가 심해져 외국선교사들 입국이 불가능하자 김대건 신부가 3대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충청도 강경의 황산포로 입국시키는데 성공합니다.

1846년 중국에 있는 메스트로 신부와 최양업 등 신부 등이 입국할 수 있도록 지시받은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어 현석문과 함께 순교하게 됩니다.

 

천주교 4대 박해 : 4) 병인박해

 

병인박해는 1866년(고종 3)부터 시작하여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1873년까지 계속된 네번째 박해로 가장 참혹하고 희생이 큰 박해입니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신자는 8천에서 1만, 대부분 무명 순교자라고 합니다.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 중 24명만 성인으로 선포되었고, 103위 성인에 포함되었습니다.

 

영불연합군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자 천주교를 이용해 러시아의 통상요구를 막아보려고 하다가 4대교구장 베르뇌 주교와 홍봉주 등을 체포하면서 박인박해가 시작됩니다.

 

 

병인박해는 4단계로 나누어집니다.

 

1단계는 1866년 봄의 박해 시작

2단계는 1866년 병인양요로 인한 박해의 확대

3단계는 1866년 남연군묘 도굴사건(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박해 확대

4단계는 1871년 신미양요로 박해가 확대, 척화비 세워짐

 

선교사들 모두가 순교하거나 탈출하여 한국교회는 또 목자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한국 천주교 교회의 박해와 시복시성

 

한국 가톨릭이 이땅에 들어오면서 100여년 동안 탄압을 받고, 순교자는 1만 명에 이릅니다.

이 때 성인반열에 오른 이는 103위.

 

시복시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남터 형장을 묘사한 미니어처 모습

 

그리고 실제 형장을 재현해 놓은 모습입니다.

 

새남터 14인 순교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모방 나베드로 신부,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 성 랑페르 드 브르트니에르 백 유스토 신부, 성 볼리외 서 루도비코 신부, 성 도리 김 헨리코 신부, 성 정의배 마르코, 성 현석문 가룰로, 성 우세영 알렉시오, 주문모 야고보 신부, 프트니콜라 미카엘 알렉산드로 신부, 프르티에 안토니오 신요안 신부, 성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 성 베르뇌 장 시메온 주교 등

 

 

새남터 순교성지 기념관을 통해 천주교 박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 봤는데요.

그들의 신앙심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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