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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숭례문/남대문 역사와 풍경

by 해피이즈나우 2019.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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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남대문 역사와 풍경

 

 

조선왕조를 세운지 3년 째인 1394년(태조 3)에 한양이 새 도읍으로 정해졌고, 종묘와 사직이 지어지고 경복궁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수도 전체를 방어할 목적으로 한양도성 둘레 네 개의 산에 성곽을 쌓고, 동서남북 각각 4개의 문(4대문)과 4개의 작은 문(4소문)을 두어 도성내외로 출입하기 편리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남쪽에 있는 대문인 남대문을 숭례문이라 명명하였습니다.

 

남대문시장 쪽 구경을 왔다가 잠시 숭례문을 들러 구경했는데요.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 풍경을 바라보며 굴곡진 숭례문의 역사를 되짚어 봤습니다.

 

숭례문은 태조 7년(1398)에 한양도성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습니다.

그후 세종 30년(1448), 성종 10년(1479), 고종 연간에 큰 수리가 있었죠.

 

조선시대에 매일 밤 인정(밤 10시)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 날 아침 파루(새벽 4시경)에 문을 열었는데, 이때 문루에 종을 달아 그 시간을 알렸다고 합니다.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에는 임금이  몸소 기청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등 숭례문은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곤 했던 곳입니다.

 

석축 위에 세워진 누각은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고,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좌우 성곽이 철거되었고,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해체 보수를 하였습니다.

 

여기에 끝나지 않고 다들 알다시피 지난 2008년 방화사건으로 크게 훼손되어 2013년에 복구하고 성곽 일부도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숭례문(남대문) 관람안내

 

입장료 : 무료

관람시간 : 2~5, 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1월 09:00~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주차장 : 없음

 

휴관일이 있지만 숭례문 내부만 들어가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것은 언제든 가능합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걸어오면서 옆으로 찍은 사진

 

숭례문이란 이름에 대한 기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성문 이름은 유교 덕목인 인의예지를 따서 지었는데요.

 

인을 의미하는 흥인지문, 의를 나타내는 돈의문, 예를 따른다는 숭례문, 지를 의미하는 숙정문(지 대신에 정)이 바로 한양도성 4대문입니다.

(원래 인의예지신의 끝인 신은 보신각이라는 이름에 들어가 있다고 함)

 

 

아울러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작은 문인 4소문동소문, 수구문, 서소문, 창의문이라고 합니다.

그 내부에 조선시대 5대 궁경복궁, 창덕궁, 경희궁, 창경궁, 경운궁이 지어진 것이죠.  

 

1900년대 숭례문 모습

숭례문 앞의 초가집들, 그리고 숭례문으로 전차가 자나가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1970년대 성곽이 짤린 도로 위의 섬이 돼버린 숭례문 모습과 현재의 숭례문 모습인데요. 

2008년 화재로 불타서 새로 지은 숭례문의 모습이 확연히 차이가 나네요.

 

 

숭례문은 개성 남대문, 평양 보통문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문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성문입니다.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 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입구에서 찍은 숭례문 모습

마감이 6시 반인데 6시10분 정도라 관광객들이 거의 없는 시간입니다.

 

목재로 된 중층 문루는 화재로 인해 상층부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으나 하층부는 다행히 크게 훼손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안정성이 확인된 기존의 부재 34%는 재사용했다고 합니다.

 

숭례문 현판의 글자는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8년 화재로 일부 손상되어 양녕대군의 위패를 모신 지덕사에 보관되어 있던 현판탁본과 근대 시기에 촬영된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고 하네요.

 

600년 넘는 세월을 지탱해 온 돌은 규모가 상당해 보입니다.

숭례문은 화강암을 높이 쌓아 만든 홍예문(무지개 모양 문)을 출입구로 삼아 도성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궐이나 성문 등의 큰 문을 닫고 잠글 때 빗장처럼 가로지르는 굵고 긴 나무의 장군목 모습

 

그리고 천정에 새겨진 용그림

 

숭례문 반대 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2층 문루로 올라가기 위해 동서 양쪽에 돌 계단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문루 둘레에 전통 벽돌 담장을 두르고 돌계단과 만나는 곳에 작은 문을 내어 문루 출입구로 삼았습니다.

 

길위의 섬으로 남아 있는 숭례문에서 바라본 도심 빌딩모습

 

지붕은 층마다 모두 겹처마로 만들어졌고, 추녀마루에는 잠상, 용마루 양쪽 끝에는 취두라 불리는 장식용 기와를 각각 세워 지붕이 위엄을 더한 모습입니다.

 

창건 후 600년 동안 수 많은 전쟁과 고난 속에서도 건재했던 숭례문이 방화로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던 그 시간은 정말 잊을 수가 없을 듯 합니다.

 

문화재에 대한 관리를 정말 신경써야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시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우리의 소중한 국보1호 숭례문, 앞으로는 천년 만년 보존되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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