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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한국 최고 최대의 전탑,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by 휴식같은 친구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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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한국 최고 최대의 전탑,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안동 임청각과 고성이씨 탑동파종택을 둘러보았습니다.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생가, 안동 임청각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종택(탑동103 카페)과 법흥사지 7층전탑의 위용

 

 

고성이씨 탑동파종택 담장 너머에는 국보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전탑법흥사지 칠층전탑이 있습니다.

그 위용이 대단해서 주위를 지나가다가 자연스럽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천 년 넘는 세월을 견디어 낸 법흥사지 칠층전탑 모습 구경해 보세요.

 

안동시내에서 안동댐과 월영교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좌측으로 보이는 풍경입니다.

고택 아래에 자리한 높은 석탑이 법흥사지 칠층전탑입니다.

 

법흥사지 칠층전탑 주위는 공사중입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고, 1381년에 중수되었으며 1487년에 개축되었습니다.

 

법흥사지 칠층전탑 뒤에 자리한 고성이씨 탑동파종택

 

고성이씨 탑동파종택은 조선 숙종 때 좌승지였던 이후식(1635~1765)이 안채를 건축하고 이어서 짓다만 사랑채와 대청을 그의 손자 원미(1690~1765)대에 완성한 가옥으로 고성 이씨 탑동파 가문의 종택입니다.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종택(탑동103 카페)과 법흥사지 7층전탑의 위용

 

법흥사지 칠층석탑 관람안내

 

관람시간 24시간

휴무일(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임청각 옆 주차)

 

법흥사지 7층전탑 표지석에는 아직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법흥골을 다른 지역인 신세리에 편입시켜서 발생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국보로서의 정식 명칭은 법흥사지 칠층전탑으로 되어 있지만, 표지석은 빨리 제대로 된 명칭으로 바꿔야겠습니다.

 

임청각에서 바라본 칠층전탑과 탑동종택 모습

 

법흥사지 칠층전탑의 높이는 17m, 기단 너비 7.75m의 거대한 탑이며,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남쪽 방향으로 2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라 피사의 사탑이라고 불리기도 한답니다. 

 

1942년 일제가 독립운동가 11명을 배출한 이상룡의 집이라서 불온한 집이라며 임청각 앞마당을 관통하는 중앙선을 깔아 기차가 지나가는 소음과 진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고성이씨 탑동파종택 모습

한옥체험도 하고 있다고 하니 국보를 바라보며 숙박하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법흥사지 칠층전탑

 

통일신라시대에 법흥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칠층 전탑으로 1487년에 개축되었습니다.

원형이 장 보존되어 있고, 현존하는 우리나라 전탑 중 최고, 최대를 자랑하고 있어서 국보(과거 국보 1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전탑은 벽돌로 쌓은 탑을 말하고, 석탑은 돌을 깎아 만든 탑입니다.

여기에 모전석탑이라고 하는 것은 전탑을 모방한 석탑(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만든 탑)을 말합니다.

 

벽돌을 쌓아 올린 멋진 전탑에서 다소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바로 기단부의 콘크리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법흥사지 칠층 전탑의 기단부를 보수한다며 시멘트로 덕지덕지 바른 모습이네요.

문화재에 대한 식견이 1도 없는 무식한 인간들이 기단부를 망쳐놨습니다.

 

칠층전탑 남쪽에 있는 임청각 복원사업이 2025년까지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 복원사업이 종료되면 법흥사지 칠층전탑도 보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기단부 콘크리트를 없애고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길 기대해 봅니다. 

 

기단부 아래에는 사찬왕상들이 조각되어 있는 모습이고요.

 

그리고 그 위 탑신부 1층에 있는 저 문은 어떤 용도일까요?

당시 발견될 때에는 많은 문화재가 안에 있었을 것만 같네요.

 

법흥사가 있던 자리인데 이 전탑 외에는 어떤 유물도 없다고 하니 훨씬 이전에 모두 도난당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벽돌은 진한 회생의 무늬없는 벽돌이며,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 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네요.

 

전탑의 각 층마다 풀이 나고 있고, 벽돌 사이의 간격이 벌어져 있어서 세월이 정말 지났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 줍니다.

 

각 층의 지붕 윗면에는 기와를 이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는 목탑이 전탑보다 앞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자료라고 합니다.

 

작은 벽돌로 이렇게 거대한 전탑을 만든 기술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것도 기와처럼 튀어나온 부분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천년 넘는 세월을 일제강점기의 철로와 무지막지한 보수로 수난을 받아온 법흥사지 칠층석탑

아프로 제대로 보수하여 천년만년 후손들에게 잘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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