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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여행] 고산윤선도유물박물관 (in 고산윤선도유적지)

by 언제나 휴식같은 친구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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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여행] 고산 윤선도 유물박물관 (in 고산윤선도유적지)

 

 

해남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고산 윤선도 유적지이며, 유적지 앞에는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이 있습니다.

 

남도여행, 고산 윤선도 유적지와 녹우당

 

고산윤선도유물박물관은 해남 백련동에 터를 잡고 500년 넘게 살아온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 녹우당 사람들의 역사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올곧은 정치가의 삶을 살고, 국문학의 비조라 불리는 고산 윤선도(1587~1671)를 비롯해 실용적 학문을 추구하며 뛰어난 예술적 감각으로 많은 그림과 글을 남긴 공재 윤두서(1668~1715) 등 녹우당 해남 윤씨가에서 남긴 4,600여 점의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에는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해남윤씨가전고화첩(보물 481호), 윤고산수적관계문서(보물 482호), 지정 14년 노비문서(보물 483호) 등이 있습니다.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은 유적지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

휴무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장 무료 

 

입장료는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비용이며2020년은 해남방문의 해라 고산 윤선도 유적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전시실 입구에는 윤두서의 손자인 윤용의 미인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뭐가 이상하지 않나요?

미인도는 분명 혜원 신윤복의 작품인데....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는 것이고, 윤두서의 손자인 윤용이 그린  '미인도'는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신기방기~ ㅎㅎ

 

고산윤선도유적지유물전시관은 지하 1층에 1, 2전시관으로 나누어져 있고, 1층에 특별전시실이 따로 있습니다.

 

1전시실은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 사람들의 가계와 역사를 소개하고, 집안에서 남긴 고문헌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전시실은 해남 윤씨의 대표작인 인물인 고산 윤선도를 소개하는 고문헌 자료와 공재 윤두서를 비롯한 윤두서 일가의 그림세계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특별전시실공재 윤두서 일가의 그림을 별도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해남 윤씨가의 삶의 터전인 가옥

 

해남 윤씨가의 윤존부로부터 12대 윤효정까지의 거주지역은 탐진으로 오늘날의 강진이라고 합니다.

이후 윤효정이 해남 백련동에 정착하면서 뿌리를 내리고 있답니다.

현재 강진 덕정동에는 집터와 함께 추원당이 있고, 한천동에는 8대 중시조 윤광전의 묘와 영모당이 있습니다.

 

해남에 있는 백련동 연동마을은 명당자리로 윤선도가 수원에 있을 때 효종이 하사한 건물을 옮겨 온 녹우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윤선도는 효종의 대군 시절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녹우당의 동쪽으로는 윤효정과 윤선도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백성을 사랑한 윤씨가

 

해남 윤씨가는 윤효정 이래로 백성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집안입니다.

흉년 때 세금을 내지 못해 옥에 갇힌 백성들의 세금을 내어주는 일을 세 번이나 한 윤효정.

근검과 적선을 강조하며 그러한 삶을 산 윤선도.

백성을 구제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윤두서 등이 있습니다.

 

600년을 이어온 남도의 종가 해남 윤씨가

 

한 터에서 600여 년을 유지해온 점은 자랑할 만한 유산입니다.

해남으로 이주한 윤효정 이후로 윤구, 윤복, 윤홍중, 윤의중, 윤유기, 윤선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명문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하였네요.

 

윤선도가 후손에 타이른 말

아들 윤인미에게 쓴 '기대아서'를 통해 편지로 가훈을 남겼습니다.

 

한마디로 검소하게 살고, 가난한 자를 보살피라는 의미입니다.

 

윤선도가 머물던 녹우당

녹우당은 해남 연동마을의 해남 윤씨 종택입니다.

 

녹우는 녹음이 우거진 때 비가 내린다는 의미와 선비의 변치않는 절개와 기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전시관 모습

 

공재 윤두서는 중국에서 전해져 온 '고씨화보'와 당시화보' 등으로 그림을 익혔습니다.

이 그림들을 보고 자신만의 그림을 만들었는데요.

조선 후기 풍속화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윤두서의 '미인도'

신윤복의 미인도와 매우 비슷하긴 합니다.

 

윤두서상(국보 제240호)

 

윤선도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가 자신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공재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뛰어난 묘사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 번씩은 보아온 그림일 것입니다.

 

공재의 작품은 매우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나타내고 있고, 17세기 말~18세기 초에 활약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후기 삼재화가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공재 윤두서의 일대기

박학다식함과 위대했던 예술정신으로 고독을 뛰어넘은 공재의 삶입니다.

 

공재 윤두서와 낙서 윤덕희의 회화세계

 

특별전시실에서는 고산 유물전시관의 기획특별전을 열기 위한 공간인데요.

지금은 공재 윤두서 일가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공재의 화풍은 아들 낙서 윤덕희와 손자 윤용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두서의 백포유거도, 강행도, 산수인물도, 조어산수도, 추강산수도 작품

 

윤두서의 짚신삼기, 윤덕희의 공기놀이, 윤용의 협롱채춘도

 

윤두서는 적극적인 화가의 삶을 살지 않아 많은 제자들이 없고, 대신 아들 윤덕희와 손자 윤용이 그의 화풍을 이어받았습니다.

윤두서만큼의 실력은 아니지만 윤덕희는 말 그림이나 고사인물도 등으로 유명하고, 윤용은 풍속화의 참맛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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