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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인천시 여행

영종도 역사 박물관, 영종역사관(영종진공원)

by 언제나 휴식같은 친구 202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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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역사 박물관, 영종역사관(영종진공원)

 

 

영종진공원에 있는 영종역사관은 긴 세월 동안 유구한 역사와 문화, 세상과 통하는 중간거점으로 그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는 영종도를 알리기 위하여 건립된 인천시 중구 구립 박물관입니다.

 

오랜 삶의 터전으로서의 영종도와 각종 개발로 인하여 급격하게 변화된 근현대 영종도의 생활문화를 담고 있는 영종도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죠.

 

운요호 사건이 있었던 서해바다 풍경이 예쁜 영종진공원에 자리하고 있으니 함께 관람하면 좋은 영종도 박물관입니다.

 

영종도 가볼만한 곳, 영종진 공원과 영종역사관

 

영종역사관 전시내용을 구경해 보세요.

 

영종역사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10:00~18:00(입장은 17:30)

휴관일 1월 1일, 명절(설과 추석)연휴, 매주 월요일

관람료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12세 이하 어린이, 기초생활, 유공자, 경로우대, 한부모가정 등은 무료관람이 됩니다.

주차장 무료

 

방문했을 때 영종역사관에서는 '우들 살던 섬 영종 용유와 바다'라는 기획전시와 '삶의 흔적, 역사가 되다'라는 테마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영종역사관 전시실은 1층에서 3층까지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엔 1전시실과 체험전시실, 키즈룸과 다목적 영상실이 있고, 2층엔 2전시실과 세미나실, 3전시실엔 기획전시실과 수장고가 있습니다.

 

1층 1전시실 입구 모습

제1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영종국제도시의 역사와 문화애 대한 전시입니다.

 

영종도 역사연표

영종도 역사는 신석기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영종, 용유 전역에서 신석기, 청동기, 원삼국시대 유적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해외 교역의 주요 경유지였고, 조선시대에는 국영 말 목장과 영종진이 설치되면서 수도방위의 주요 거점이었습니다.

 

운요호 사건 이후 개항되어 반농반어의 평범한 바닷가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인천국제공항과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영종하늘도시 건설로 국제교통의 허브가 되었습니다.

 

신석기시대 선사인의 삶

 

영종, 용유 유구의 의미 그리고 유적 분포도

 

영종도 운서동에서는 50여기의 선사시대 집자리와 구덩이, 야외 화덕자리가 확인되었습니다.

집자리는 대부분 네모 모양으로 기둥구멍과 침상, 화덕자리가 발견되었죠.

뿐만 아니라 갈판, 갈돌, 갈돌돌칼, 숫돌, 그물추, 간돌화살촉 등의 다양한 석기들도 출토되었습니다.

 

1전시실 맞은편 다목적영상실에는 테마전시로 영종역사관 기증유물전인 '삶의 흔적, 역사가 되다'가 내년 3월 31일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종도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농기구들

 

1960년대 상장과 수료증 등

 

옛날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 풍경 사진과 생활모습

1층 체험전시실

어린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체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석기시대 움집 모습을 재현한 공간으로 원시인이 불을 지피고 생활하는 모습을 꾸며 놓았습니다.

 

소금만들기, 염전 체험 

발로 누르면 굴레가 돌아가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네요.

 

염전에서 소금 채취하는 체험

 

제2전시실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영종국제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자연도 주민의 삶과 영종도 이설 선시 모습입니다.

 

영종진은 원래 화성시 남양읍에 있다가 이곳 영종도로 이설 되었습니다.

효종 4년(1853)에 영종진 명칭을 그대로 자연도로 옮겼다고 합니다.

(자연도는 영종도의 옛 지명 이름임)

 

영종도 일대가 군사전략상 중요한 위치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요.

강화도 입구에 해당되는 자연도를 방어함은 물론 도읍방어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로 통하는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삼전도의 굴욕을 맛본 역사적 경험으로 유사시 강화도로 들어가는 다양한 통로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영종도 이설입니다.

 

쇄국과 개항의 충돌, 영종진 앞바다

영종진에서 발생했던 외세와의 충돌 과정과 운요호 사건, 근대로 향해가는 영종도 모습을 그렸습니다.

 

운요호 사건으로 영종도에서 피해 상황들

 

양주성 금속비(고종 14년, 1877년)

이 비는 영종 첨철제사 양주성의 공덕을 기린 비입니다.

 

1875년에 초지진을 포격하고 돌아가던 일본 군함 운요호가 영종진을 포격하고 점령하자 이에 조정에서는 인천부를 방어영으로 승격시키고 홍문관 제학 양주성을 영종 첨절제사로 임명했습니다.

양주성은 제임기간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풀고 운요호의 포격으로 불탄 관아를 복원하고 적의 침입에 대비한 공로를 인정받아 주민들이 놋그릇을 모아 이 비를 세웠습니다.

 

영종, 용유의 삶의 터전 모습

 

부엌

 

안방

 

염전에서 희망을 담다

 

우리나라 천일제염은 1907년 인천의 주암염전에서 시작되었고, 영종도 염전개발은 주민들의 주사업이었다고 합니다.

29개 업체, 종사자가 250~3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영종, 용유의 어촌 민속문화

 

소금 채취작업과 운반 및 판매

 

현대에 들어서서 영종도는 하늘도시로 비상합니다.

 

영종도와 용유도는 1970년대 부속 도서인 삼목도, 신불도를 포함해 연육교가 개통되면서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신공항이 추진되면서 하나의 섬이 되었고, 2001년 인천국제공항, 2000년 영종대교, 2009년 인천대교가 준공되었습니다.

 

당시 영종도에는 8,900여명이 살았으나 하늘도시가 들어서면서 1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네요.

 

3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우들 설던 섬, 영종 용유와 바다'란 주제로 12월 31일까지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세로로 놓여 잇는 것을 가로로 표시해 봤습니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대를 이은 새우잡이

 

전시관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서해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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