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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 대한불교 조계종총본산 조계사

by 해피이즈나우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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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자 부처님 오신 날 불기 2569년을 맞는 날인데요.

불기는 석가모니의 열반 연도를 기준(붓다는 BC 544년 열반 한으로 보고 있음)으로 한 연대를 가르키는 불교용어이며, 부처님오신날은 음력 4월 8일(사월초파일, BC 624년)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불교에서 가장 큰 행사입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한국불교총본산 조계사는 지난 4월 26일 국가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연등회의 연등행렬이 흥인지문부터 종로를 지나 종각사거리, 조계사까지 행차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제 부처님 오신 날 당일 행사를 앞두고 있는 조계사,

대한불교 조계종총본산으로서 부처님 오신날에 언론에서 가장 많이 조명을 받는 사찰 풍경을 담았습니다. 

 

불기 2569년을 맞는 조계사 모습

 

조계사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총본산 사찰로 조계사의 전신이었던 각황사가 1910년 서울 종로 중심지에 창건된 이래 100여 년 동안 한국불교 일번지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천태종 한국통본산은 수인사임)

 

당시 각황사는 조선불교의 자주화와 민족자존 회복을 염원하는 스님들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근대 한국불교 최초의 포교당, 일제치하 최초의 포교당이었고 서울 4대문 안에 최초로 자리 잡은 사찰이었습니다.

 

1937년 각황사를 현재의 조계사로 옮기는 공사를 시작,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해 태고사라 명명했습니다.

이때 대웅전은 정읍에 있었던 보천교 십일전을 이전 개축했고, 1954년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난 후 조계사로 개명했습니다.

 

우정국로에 있는 조계사 입구

 

불교정화운동은 1954년 5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이 전통불교사원에서 대처승은 물러가라는 요지의 유시를 내린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요.

 

본래 대처승은 한국불교의 독신 전통과 달리,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승려들을 강제 결혼시키면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불교정화운동은 우선 일본 불교의 대처승단 영향으로부터 한국 불교의 독신 승단 전통을 복원시키려는 운동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불교계 분열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하며, 인근에 있는 태고종과 조계종이 인접한 대한민국 불교의 맥이 살아있는 대한민국 불교의 성지인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세우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계획에 반대하고 나선 이유입니다.

 

대한불교 총본산 조계사라고 적힌 일주문은 연등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조선은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했습니다.

4대문 안에 스님들 출입은 원천적으로 금지됐고, 도성 안에 사찰은 당연히 있을 수가 없었죠.

태종과 성군이라 일컫는 세종, 성종 역시 불교를 철저히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일본승려가 도성안 출입을 허용해 달라고 하면서 400여 년 만에 열렸고, 1910년 사대문 안에 각황사가 처음으로 설립된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이 국권을 파탈한 후 사찰령 내리자 스님들은 항일의지를 다지고 포교당 등은 독립운동의 비밀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불교에서는 불교계를 통합한 총본산 설립이라는 염원이 생겼으나  일본식 건축인 각황사를 총본산으로 삼기에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일제는 불교가 통합되면 통치가 수월할 것이란 기대에 총본산을 찬성하며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총본산으로 하자고 했으나 이를 거부했고, 1937년에야 일제에게 확답을 주지 않은 채 조선총독부로부터 총본산 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이때 조계사 자리가 총본산 위치로 결정되었고, 법당은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보천교 십일전으로 결정하여 항일의 의지를 깊이 새겼습니다.

정읍에서 서울까지 자재를 옮기며 건축한 대웅전은 1938년 10월 25일 오전 6시 대웅전 낙성식이 성대하게 거행됐습니다.

 

문제는 총본산의 이름, 불교계는 고심 끝에 보우대사가 주석했던 삼각산 태고사를 이전해 오는 형식을 빌려 태고사라 불렀습니다.

광복 후 불교정화운동을 거치고 1955년 조계사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계사 일주문 앞에 있는 연등작품들

 

조계사는 서울 도심인 종로 한가운데 있는 사찰로 다른 사찰과 달리 24시간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혹은 불자든 아니든 간에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들를 수 있는 열린공간입니다.

 

조계사 대웅전 옆에서는 지난 경상지역 산불 극복을 위한 '산불재난 극복 발원 바자회'가 열리고 있더군요.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조계사 바자회 모습

 

조계사 백송과 조계사 천진불

 

조계사 백송 천연기념물 9호로 지정된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재판소에 있는 천연기념물 8호인 백송과 함께 희귀종에 속합니다.

조계사 전신인 각황사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수령은 500년이 넘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천진불은 2006년 아기 부처님의 천진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해 봉행된 것입니다.

 

조계사 대웅전 마당의 회화나무

 

백송과 함께 500여 년 된 것으로 추정하며, 서울시 지정 보호수입니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군자의 성품을 닮았다고 해서 군자목으로 불리는 나무랍니다.

 

5월 5일 부처님 오신 날 봉축식이 열리는 마당입니다.

 

조계사 대웅전은 보천교 십일전을 이전해 개축한 전각인데요.

조계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대웅전이 보천교에서 가져온 것이라 보천교에 대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보천교는 고창에서 태어난 월곡 차경석(1880~1936)이 창립(교주)한 증산계통의 신흥종교로 증산교에 커다란 영향을 준 종교라고 합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 접주로 처형당한 차치구의 장남으로 일찍부터 동학운동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증산교의 비조 강일순을 만나 이종사촌 누나인 고판례를 부인으로 추천하는 등 제자가 되었고, 강일순이 죽은 후 차경석 등 그의 제자들이 재집결하여 신종교를 세웠습니다,.

신도들이 크게 늘자 1918년 교권을 장악하고 고판례와의 접촉도 차단했으며 한반도 최대 종교로 성장했습니다.

 

1922년에 정읍군 입암면 대흥리에 교당을 신축하고 보천교 총본산인 십일전을 세웠으며, 경복궁 근정전에 비견될 만큼 큰 규모였습니다,

 

보천교는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친일행위도 있는 등 이어져 오다가 1936년 차경석이 사망하고 총독부가 유사종교해산령을 발표함에 따라 교단도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대순진리회의 전신인 태극도의 교주 조철제가 최초로 등산계통 종교에 발을 디딜 때 입교한 단체가 보천교였다고 합니다.

증산도 초대 교주 안세찬의 부친이 보천교 신자였고, 교단의 역사에 보천교를 편입시켰습니다.

 

큰 영웅이 계시는 곳, 석가모니 부처님 등 삼존불을 모신 전각, 조계사 대웅전

 

조계사 대웅전 편액은 전남 구례 화엄사에 있는 대웅전 편액을 탁본하여 조각한 것을 대웅전 낙성 당시에 단 것이라고 합니다.

글씨는 조선 시대 선조대왕의 여덟 번째 아들인 의창군 이광(1589~1645)의 것입니다.

 

석가모니와 함께 좌우에 아미타부처님과 약사여래부처님이 봉안되어 있는 경우에는 대웅전이라는 명칭보다 더 격이 높은 대웅보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조계사는 대웅보전이라 불러야 하지만, 창건 당시부터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을 모셨기 때문에 대웅전이라고 불러져, 2006년 삼존불(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아미타부처님, 우측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이후에도 이전에 부르던 명칭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네요.

 

대웅전 삼존불을 바라보고 서 있는 곳에서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 목조석가모니부처님(보물)은 창건 당시 전라남도 월출산 도갑사의 부처님(조선 초기 1460년대 전후)을 이운하여 모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목조 불상은 조계사 창건 당시부터 대웅전의 주불로 모셔졌으나 대웅전 크기에 비해 불상이 지나치게 작다는 사부대중의 뜻에 따라 새로 삼존불을 모시게 되었으며, 목조 불상은 향후 따로 영산전을 신축하여 그곳에 주불로 모실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네요.

 

조계사 8각 10층 부처님진신사리탑

 

과거의 조계사 부처님 진신사리탑은 일제 강점기에 건립되어 우리나라 전통양식에 맞지 않고 왜색을 띄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와서 2009년 10월에 새로 건립한 것입니다.

탑의 외부에는 8여래상, 8보살상, 8신중상 등을 부조 장엄하였고, 내부에는 1913년 스리랑카로부터 전해진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하고 소형불상 일만 사천 분을 모셨다고 합니다.

또한 1660년 은진 쌍계사각판 법화경 7권 한 질과 25조 가사 한 벌 등을 안치하여 한국불교 중심지에 길이 전승될 사리탑의 위엄을 갖추도록 하였습니다. 

 

 서쪽에서 바라본 대웅전 앞마당

 

서래당이라고 적힌 곳의 1층은 제사공양간, 2층은 범종루가 있습니다.

 

법고, 운판, 목어, 범종 등의 사물이 있는 곳으로, 매일 새벽 예불(오전 4시경)과 저녁 예불(저녁 6시경) 그리고 특별한 행사 때 치게 됩니다.

 

극락전 앞 영가등

극락전의 내부 중심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좌우에는 각각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좌우 측면으로 십대명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앞둔 조계사의 화려한 연등

 

조계사 백송 뒤 연등

 

대웅전 뒤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 역사문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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