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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창경궁 춘당지와 대온실, 궁궐 속 아름다운 정원(후원) 산책

해피이즈나우 2025. 6. 9. 03:00

창경궁은 조선 9대조 임금인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입니다.

 

원래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이 있던 터였으며, 이곳에 세종은 상왕인 태종을 위한 수강궁을 세운 것이 창경궁의 시작이었는데요.

성종은 3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하면서 창경궁이란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창경이란 명칭은 창성하고 경사스럽다는 의미로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 이 둘을 합쳐 동궐이라 했고,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습니다.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기 위해 왕과 왕비, 후궁, 공주, 궁인의 처소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복궁은 일정한 원칙에 다라 계획적으로 지은 반면 창경궁은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어져 이용된 궁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 5대 궁궐 중 하나로 창건 당시에는 쓰임새가 많지 않았다가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 파괴로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이궁으로 활용빈도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전쟁과 화재, 일제강점기 등으로 굴곡진 역사를 안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많은 전각들을 복원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궁궐 배치와 춘당지 등 정원은 그 자체만으로도 왕실의 채취를 느끼는 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현재 창경궁은 홍화문 및 궁장, 명정전 권역, 환경전 권역, 통명전 권역, 수강재 권역, 통화전 권역 그리고 춘당지와 대온실 등이 있는 정원(후원) 권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지난번 문화가 있는 날, 창경궁을 둘러보고 왔는데요.

창경궁 입장료 및 관람정보와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과 궐내각사 터, 관천대와 종묘열결 지점 등에 대한 내용, 명정전과 함인정, 환경전, 집복헌과 영춘헌 등의 창경궁 주요 전각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창경궁의 후원이라 할 수 있는 춘당지와 대온실의 정원 등 세 파트로 나누어 정리해 봤습니다.

 

여기서는 창경궁 후원이자 정원인 춘당지와 대온실, 관덕정 등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창경궁 입장료 등 관람정보 - 홍화문, 궐내각사/동궁 터, 관천대, 종묘 연결지점

창경궁 전각 소개 – 명정전, 함인정, 환경전, 통명전, 집복헌, 영춘헌 등

창경궁 춘당지와 대온실, 궁궐 속 아름다운 정원(후원) 산책

 

창경궁 자경전 터 산책로를 따라 풍기대를 지나 걸어가면 창경궁의 후원 격인 춘당지와 대온실, 관덕정 등의 정원이 나옵니다.

 

소나무숲이 예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조금 이동하니 숲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성종태실과 태실비가 있다고 보입니다.

성종을 출산할 때 태를 묻은 곳으로 원래 태실비는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에 위치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창경궁 춘당지

 

춘당지는 원래 창경궁 후원인 대온실 아래에 있는 작은 연못(소춘당지)을 말하는데요.

1909년 일제가 춘당대 앞 귄농장 자리에 연못을 파고, 춘당대 앞에 있어 춘당지(대춘당지)라고 이름 붙인 곳입니다.

 

춘당대는 창덕궁 후원 부용지, 영화당 동쪽에 있는 넓은 마당으로 과거시험을 보거나 기우제를 지내는 등의 용도로 사용된 곳이고 그 아래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원래 춘당대와 춘당지는 짝을 이룬 연못이었으나 지금은 담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권농장은 왕과 왕비가  농사와 양잠을 체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왕실 농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은 크게 훼손되었고, 권농장 역시 춘당지로 바뀌며 수정이라고 하는 일본식 건물을 세웠습니다.

해방 이후 1965년 춘당지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었고, 1967년에 3층 높이의 수정궁이라는 건물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연회장소로 사용했습니다.

 

1980년대에 창덕궁 복원계획에 따라 수정궁이 철거되고 연못으로만 조성한 것입니다.

 

현재의 춘당지는 대온실 아래에 있는 작은 소춘당지와 일제가 농지를 파 만든 대춘당지 등 2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1909년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할 때 이 자리에 연못(대춘당지)을 파서 유원지로 만든 것이죠.

 

이후 1986년 창경궁 복원 때 춘당지 가운데에 섬을 조성하여 우리나라 전통양식에 가깝게 다시 조성하였습니다.

 

경주 안압지를 참조해 대춘당지 한가운데에 작은 섬도 만들었는데, 그 작은 섬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창경궁 팔각칠층석탑(보물)

 

4각형 받침돌과 8면에 안상을 새긴 2탄 고입돌과 8면에 안상과 꽃을 새긴 연화대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9층의 탑신부는 기와지붕건물이고, 1층은 연화좌 위에 높고 볼록한 놈돌을 얹었습니다.

 

팔각칠층석탑은 1층 몸돌에 성화 6년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1470년(성종 1)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는데요

중국 명나라 탑 양식을 띤다고 합니다.

 

대춘당지와 작은 섬 하나

 

그리고 그 위쪽에 있는 이 작은 소춘당지가 조선시대부터 있던 춘당지입니다.

 

창경궁 자생식물학습장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있는 식용·약용, 관상용 식물 약 200여 종이 심어진 곳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도 있는 들국화류부터 울릉도가 원산인 우리나라 특산종 ‘섬초롱꽃’도 볼 수 있는데요.

봄부터 가을까지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피고 지는 색색의 꽃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창경궁 대온실

 

창경궁 대온실은 창경궁에 있는 식물원으로 1909년 완공된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한국 최초 서양식 온실입니다.

 

대온실 앞 정원은 분수를 갖춘 프랑스식 정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창경궁 대온실은 1909년(융희 3)에 완공했는데요.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입니다.

 

일제의 마지막 황제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시킨 뒤 왕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원과 함께 지은 식물원입니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고,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창경궁 대온실 모습

 

 

창경궁 대온실에 있는 식물들

 

대온실에서 나와 위쪽 산책로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담장 너머는 창덕궁 후원인데, 연경당에 있는 농수정이 보입니다.

 

창덕궁 후원 -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와 의두합, 연경당

창덕궁 후원 - 존덕정과 펌우사, 옥류천

 

창경궁 대온실 뒷모습

 

창경궁 대온실 동쪽에 있는 관덕정

 

창경궁 관덕정 임금이 신하들과 활 쏘는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고, 군사훈련과 무과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누에 관련 잠례를 거행했던 장소였습니다.

 

잠단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42년(인조 20)에 관덕정을 건립했습니다.

처음엔 취미정으로 부르다가 1664년(현종 5)에 관덕정이라 불렀습니다.

 

창경궁 백송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백송이 세 그루나 있습니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하얗고 껍질 조각이 오래되면 저절로 떨어지는 소나무 종류입니다.

원산지인 중국도 희귀한 나무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입니다.

 

백송은 현재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풍경 그리고 천연기념물 8호인 재동 백송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 대한불교 조계종총본산 조계사

 

산딸나무 꽃

 

 

창경궁은 문화가 있는 날을 이용해 거의 4년 만에 찾았습니다.

도심 속 고궁이 주는 매력은 언제나 특별하지만, 창경궁은 그중에서도 자연과 전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마음에 남았습니다.
화려하기보다는 단정하고 소박한 아름다움, 그리고 생각보다 넓고 깊이 있는 구성 덕분에 천천히 걷고 오래 머물게 되는 곳이었습니다.

 

 

아래는 창경궁을 관람하면서 만든 유튜브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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