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은 1405년 조선 제3대 왕 태종 때 건립된 궁궐로, 조선의 역사와 한국 전통 건축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입니다.
처음엔 조선의 법궁은 경복궁이었고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 있어 창경궁과 함께 '동궁'이라 불리며 이궁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탄 뒤 광해군은 창덕궁을 가장 먼저 복구하며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약 270년 동안 조선의 실질적인 법궁이자 정궁 역할을 했습니다.
문화가 있는 날에는 서울에 있는 4대 궁궐과 종묘를 무료로 개방하는데요.
점심식사를 한 후 창덕궁에 둘러 궐내각사의 내의원(약방), 홍문관(옥당), 규장각, 검서청, 구선원전 등의 전각들을 둘러봤습니다.

창덕궁 금천교(보물)와 진선문
창덕궁 금천교는 조선 초기인 1411년에 가설된 돌다리로 윗부분 길이 12.9m, 너비 12.5m.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그리고 진선문은 창덕궁 돈화문에 이은 중문으로 금천교를 건너면 만날 수 있고, 들어가면 인정문과 인정전, 희정당 낙선재, 후원 등 창덕궁 권역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번엔 진선문 밖 궐내각사만 둘러봤습니다.
창덕궁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의 조화일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산을 깎지 않고 북악산 자락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전각들을 배치했기 때문에, 한국적인 건축미가 가장 잘 살아있는 궁궐로 평가받죠.
특히 궁궐 뒤편에 자리 잡은 '후원(비원)'은 아름다운 정자와 연못,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어우러진 최고의 왕실 정원인데요.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서울의 고궁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습니다.
문화가 있는 날 서울 고궁 관람, 창덕궁 돈화문과 입장료 등 관람안내
창덕궁 중심 전각들 -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성정각

돈화문(현재 공사중)을 지나 진선문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창덕궁 금천교(보물)
창덕궁내에 있는 조선시대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에 있는 금천을 가로질러 놓은 돌다리입니다.

창덕궁의 명당수, 즉 금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돈화문 오른쪽까지 와서 궐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어구 물가에는 화강석 6∼7단을 가지런하게 쌓은 축대를 설치했습니다.
경복궁 영제교나 창경궁 옥천교가 정전 남면을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명당수 위에 남북 방향으로 설치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창덕궁과 경희궁 어구의 돌다리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명당수 위에 동서 방향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창덕궁 궐내각사 전경
창덕궁 궐내각사는 금천을 기준으로 금천동쪽과 금천서쪽으로 구분되는데요.
금천 동쪽에는 내의원(약방)과 영의사, 예문관, 양지당, 구선원전, 홍문관(옥당) 등이 있고,
금천 서쪽에는 규장각과 검서청, 봉모당, 책고 등이 있습니다.
금천 서쪽을 관람하고, 이후 동쪽 순으로 관람했습니다.

창덕궁 궐내각사 입구
궐내각사는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궁궐 안에 설치되었고, 이를 지칭합니다.
그 가운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옥당),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약방),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 등이 중심시설이었습니다.
궐내각사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고, 2005년에 복원되었는데요.
가운데로 흐르는 금천을 경계와 경관요소로 삼았고,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어 미로처럼 복잡하게 구성되었습니다.

궐내각사 가장 오른쪽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청덕궁 내의원(약방)을 만납니다.
내의원은 궁궐의 의료기관으로 왕실 병원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약방은 내의원의 다른 이름으로 조선시대 한의학은 치료보다는 처방에 중점을 두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내의원 모습
지금은 궁궐 내 전통행사의 일환으로 내의원 체험과 전시 등을 하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내의원은 창덕궁 창건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처음엔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모른다고 합니다.
태종 때에는 전의감 내의 내약방, 세종 때에는 내의원으로 독립시켰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광해군 때 재건했고, 일제강점기 왕실의원 기능은 순종의 침전인 대조전 근처의 성정각으로 옮겨가면서 내의원은 헐렸다고 합니다.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으로 가는 숭범문
숭범문은 인정전의 서문인 것입니다.
아울러 숭범문 행각으로 북쪽으로 창덕궁 향실이, 남쪽으로 예문관이 있었던 곳입니다.
창덕궁 향실은 제사용 향을 보관하던 곳으로 일제가 변형했고, 2000년대 들어서서 복원한 것입니다.
창덕궁 예문관은 왕의 말이나 명령을 문서로 작성하는 기관이며, 때로는 외교문서를 쓰고 궁중의식 규율을 관장하기도 했습니다.
고려시대 예문춘추관을 그대로 이어오다가 태종 때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나누었습니다.

창덕궁 영의사
영의사는 현판이 없는 전각으로 구선원전의 재실로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본채와 별채, 창고 등이 이어진 건물형태입니다.

영의사 앞에 있는 고목(느티나무)

영의사 위에 있는 양지당
선원전의 부속건물로 왕이 선원전에 참배하기 전에 제례를 준비하면서 대기하는 어재실입니다.
1657년(효종 8)에 왕대비 장렬왕후를 모시기 위해 작은 별당으로 지었다가 숙종 대에 춘휘전이 선원전으로 바뀌면서 양지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양지는 ’고상한 뜻을 기른다‘는 의미와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그 마음을 즐겁게 한다. 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고상하고 엄숙한 뜻을 배양한다‘는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창덕궁 궐내각사 금천 동쪽 제일 위에 있는 구선원전(보물)
선원전 좌측에 진설청이 있고, 우측에 내재실이 따로 있습니다.
선원전은 궁궐 내에서 역대 왕과 왕후들의 어진(초상화)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던 진전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선원전을 후원 깊숙한 곳에 짓고 옮기면서 빈 전각이 되었고, 부속 건물들은 2005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선원전 뒤쪽에 세로로 긴 전각인 의풍각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신축된 것으로 제사용 그릇과 도구 등을 보관하던 창고였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원묘인 문소전 뒤쪽에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숙종의 어진을 봉안하면서 부활해 영조, 정조, 순조, 익종, 헌종의 어진을 봉안하고 추모했습니다.
고종 대에 선원전은 창덕궁 외에 경복궁과 경운궁에도 지어 왕이 거처하는 궁궐을 바꿀 때에 대비했습니다.
1899년 경운궁 선원전에 1실을 추가로 지어 태조 어진을 봉안했고, 1907년엔 영희전과 외방 태조 진전의 어진들을 경운궁 선원전으로 옮겼습니다.
1921년 이왕직에서 창덕궁 내에 신선원전을 12실로 짓고 영희전과 구선원전에 있던 어진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신선원전은 현재 창덕궁 북서쪽 깊은 곳, 중앙중고등학교 옆, 원서동 빨래터 위에 있고, 입구엔 신선원전 외삼문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오래된 빨래터, 창덕궁 신선원전 외삼문 옆 원서동 빨래터


구선원전 부속건물인 진설청과 내재실
진설청은 선원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할 음식, 다과 등을 준비하고 차려놓는 건물이고,
내재실은 제사 전에 의관을 정비하고 제수나 의례 절차를 준비하며 참여 인원들이 대기하거나 숙식하던 공간입니다.

구선원전 아래에 있는 억석루
궐내각사 내의원의 부속건물로 약을 다루던 곳으로 내의원보다는 선원전과 영의사 사이에 위치합니다.
옛날을 생각한다는 의미로 한경지략에서 가져온 단어로 신농을 생각하며 정성껏 약을 만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억석루는 언제 지어졌는지 모르나 영조 시대에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일제강점기에 내의원이 성정각으로 옮겨가면서 헐렸습니다.
현재의 억석루는 2005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이번엔 궐내각사 옥당(홍문관) 입구입니다.

창덕궁 홍문관은 궁중의 문서처리와 관리 및 임금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하던 기관으로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삼사로 불릴 만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현판은 옥당으로 적혀 있는데, 옥같이 귀한 인재들이 일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이는 홍문관의 다른 이름입니다.
홍문관은 1463년(세조 9년)에 세조가 집현전을 대신할 문서 보관 기관으로 처음 만들었고, 성종이 자문 및 학술 연구 기관으로 재편했습니다.
그때 홍문관 청사도 지은 듯하고,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불탄 후, 광해군 때 재건했습니다.
1907년(융희 원년)에 일제는 홍문관 기구를 폐지했고, 일제강점기에는 건물마저 헐었다가 2005년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창덕궁 금천 동쪽의 궐내각사를 둘러보고, 금천 서쪽에 있는 궐내각사로 이동합니다.
궐내각사 건물이 금천 위에 지어진 점이 특이합니다.

고목 앞 궐내각사 서쪽 입구로 들어가면 규장각과 검서청, 봉모당, 책고 등이 있습니다.

창덕궁 규장각
규장각은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의 글과 그림,, 선보 등을 보관하던 왕실도서관 및 학술연구기관인데요.
세조 때 처음 설립되었다가 얼마 못가 폐지, 숙종 때 규장각을 세웠으나 작고 존재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가 즉위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정책을 펴기 위한 공간으로 규정각을 부활시켰는데, 원래 창덕궁 후원 부용지 앞에 있는 2층 누각인 주합루를 사용했습니다.(1층 규장각, 2층 주합루)
규장각에는 여러 부속 건물이 있었습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근처에 사무실에 해당하는 이문원을 두었고, 역대 왕들의 초상화, 어필 등을 보관한 봉모당을 비롯하여, 국내의 서적을 보관한 서고와 포쇄(서책을 정기적으로 햇볕이나 바람에 말리는 작업)를 위한 공간인 서향각, 중국에서 수입한 서적을 보관한 개유와, 열고관, 그리고 휴식 공간으로 부용정이 있었습니다.
규장각 제도가 정비되고 점점 규모가 커지자 1781년(정조 5년) 규장각을 인정전 서쪽의 궐내각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규장각 옆 창덕궁 검서청
규장각의 부속건물로 원래 이름은 대유재였는데, 주합루가 좁아지자 옛 오위도총부 자리에 규장각 창사를 새로 지으면서 이 건물을 대유재라 불렀습니다.
검서청은 규장각 검서관들의 사무실이자 당직실로 사용했던 공간입니다.
연구에 지친 관리들을 위해 금천 옆에 지어 금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라는 배려가 담긴 듯합니다.
정조는 규장각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하여 당대 최고의 인재들을 이곳에 발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관직이 높은 신하라도 함부로 규장각에 들어올 수 없게 했습니다.
정약용을 비롯해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서이수와 같은 서얼들을 적극 등용하면서 조선후기의 문화중흥을 이끌어 가는 두뇌집단의 산실이 되었고, 규장각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역대 왕들의 글이나 책 등을 정리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개혁정치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규장각과 검서청 뒷공간과 창덕궁 운한문
운한문은 창덕궁 봉모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며, 봉모당 역시 규장각의 부속건물입니다.
정조 사후에는 명목상의 기능만 남아 유명무실해졌고, 1907년 궁내부 관제가 개편되면서 홍문관의 업무 기능을 통합해 조직이 확대되었습니다.
이후 규장각 조직이 확대되면서 홍문관, 시강원, 집옥재, 사고 등의 도서까지 관장하였습니다.

창덕궁 봉모당
규장각의 부속건물로 역대 임금들의 글과 글씨, 어진, 도장, 족보, 고명, 유고, 장지 등을 보관하던 곳이었습니다.
봉모는 모훈(후대 임금들에게 귀감을 줄만한 교훈) 자료를 봉안한다는 뜻이며, 이곳은 관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한 이후 규장각은 폐지되었고, 소장도서들은 이왕직 서무계 도서주임이 관리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규장각 도서 관리주체가 여러 번 변경되다가 1930년경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이관했고, 광복과 함께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 인계되었습니다.
1992년 서울대학교 안에 ‘규장각’이라는 건물이 신축되면서, 자료 보관과 학술 연구기관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봉모당 뒤에 있는 창덕궁 책고
책을 보관하던 건물인 듯한데, 이곳까진 관람객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더군요.

봉모당 앞 금천
모처럼 문화가 있는 날, 창덕궁 무료관람을 이용해 궐내각사의 많은 전각들과 관청을 구경했습니다.
고궁관람은 그냥 전각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역사를 더 깊이 들어가면 많은 지식을 충전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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