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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가볼만한 곳, 강화전쟁박물관

by 해피이즈나우 2020.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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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가볼만한 곳, 강화전쟁박물관

 

 

강화도 전쟁관련 유적지를 돌아다니다 마지막에 들린 곳은 강화전쟁박물관갑곶돈대입니다.

 

[강화도 여행] 갑곶돈대 / 강화전쟁박물관

 

 

강화도는 한양에서 가깝고, 해협이 좁아 예부터 천혜의 방어기지 역할을 했는데요.

 

그렇다보니 역사의 고비 때마다 국방상 요충지 역할을 수행하며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야 했기에 이를 방어하기 위한 진지가 많이 있습니다.

12진보 53돈대가 이를 말해주는 역사적사실이죠.

 

이런 강화도의 호국정신을 널리알리기 위해 강화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주제로 각종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연구, 보존, 수집하기 위해 설립한 곳이 강화전쟁박물관입니다.

 

강화전쟁박물관은 갑곶돈대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강화전쟁박물관 입장료는 갑곶돈대 관람료에 포함되어 있어 별도로 징수하지 않습니다.

갑곶돈대 입장료는 어른이 900원, 어린이, 청소년, 군인이 600원입니다.

관람시간은 09:00 ~ 18:00(매표마감은 17:30)

휴무일은 없음

주차장은 입구에 무료로 가능합니다.

 

강화전쟁박물관은 강화대교 남쪽 100여미터 지점에 위치합니다.

 

 

전시실은 총 4개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주로 강화도에서 발생한 전쟁위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야외에 포졸을 대상으로 하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1층에는 1전시실과 2전시실, 2층에는 3전시실과 4전시실이 있습니다.

 

1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전쟁역사와 근현대에 일어난 강화도 전쟁을 담고 있고,

2전시실은 고려시대의 강화도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1전시실의 고대전쟁사

고조선부터 고구려, 백제, 신사시대의 우리나라 전쟁역사 연표입니다.

 

스펙타클한 복합영상을 통해 건국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외세의 침략에 맞서 겨레를 지켜온 강화의 호국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주제관입니다.

 

선사시대의 무기와 선사문명의 요람 강화, 참성단과 삼랑성에 깃든 단군신화

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강화지역의 전쟁역사를 각종 무기류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체험관에서는 전쟁을 소재로 하는 퀴즈를 풀어보면 지식쌓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1627년(인조5)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여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왕은 대신들을 거느리고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연미정에서 후금과 강화조약을 체결합니다.

 

정묘호란 이후 강화는 군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도호부에서 유수부로 승격되죠.

1636년(인조14) 청나라의 침입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족과 대신들은 강화로, 왕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청군에 대한 항쟁을 전개했습니다.

 

 

강화 방어의 책임을 맡은 관리들의 태만으로 강화도는 곧 청군에 함락되었으나, 남문 문루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김상용 등 관리들과 여인들이 청군에 항거해 순결합니다.

 

강화도가 함락되자 결국 왕은 청에 항복하고 말았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조선의 수도인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던 강화도는 19세기 통상을 요구하는 서구열강의 침략을 수시로 받게 됩니다.

1866년(고종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사건인 병인박해를 빌미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상륙하여 병인양요가 발생하는데 양헌수 부대가 프랑스군과 정족산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합니다.

 

1871년(고종8)에는 제너럴셔먼호의 전소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아세아함대가 강하에 침입하여 신미양요가 발생하는데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이 결사항전하여 미국의 침략을 막아냈습니다.

 

천혜의 요새, 강화

 

강화도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교차하는 경기만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물자와 문화의 교류가 활발했던 곳입니다.

토지가 비옥하여 생산성이 높은 반면 갯벌이 넓고 물살이 세서 접근이 어려운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특히, 고려-조선시대에는 수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는 보루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삼국-남북국시대의 강화

 

제2전시실고려시대의 강화도의 전쟁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려의 주권을 지켜낸 강화천도

 

몽골은 고려와 화의를 맺은 뒤 고려에 다루가치를 파견하고 과중한 공물과 노동력을 요구했습니다.

무신정권의 최우는 몽골에 대항할 것을 결심하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습니다.

이때가 1232년이며, 수도였던 곳은 지금의 고려궁지라고 합니다.

 

[강화도 역사기행]몽골침략과 병인양요의 아픈역사를 간직한 '고려궁지' 답사

 

 


강화가 임시수도(1232~1270)로 선택된 것은 바다로 둘러싸여 몽골군이 접근하기 어려웠고 해로로 조세를 운송하기 편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몽골은 6차에 걸쳐 침공하였는데, 이는 몽골이 중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고려가 남송과 동맹을 맺고 배후를 공격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려는 39년간 항전을 계속하다가 무신정권이 붕괴하자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하였습니다.

 

고려장군과 몽골장군의 대결모습을 실물크기 모형으로 재현한 모습

 

강화 중성의 건설모습

 

몽골의 고려침략과 대몽항쟁기의 강화

 

2층에는 3전시실과 4전시실이 있는데요.

창 밖으로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3전시실은 조선시대의 전쟁

4전시실은 근현대의 전쟁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3전시실에 붙어 있는 조선 전쟁사 연표

 

1871년 신미양요 내용

 

수자기, 어재연 장군기

 

장수를 뜻하는 '수'자가 적혀 있는 수자기는 총 지휘관이 있는 본영에 꽂는 깃발입니다.

 

 

1871년 신미양요 때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에 걸고 싸웠던 깃발로 미군에 의해 약탈되어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던 것인데요.

136년 만인 2007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장기대여식으로 국내에 반입되었다고 합니다.

 

강화도는 1413년에 도호부로 개편되었다가 1627년(인조5) 정묘호란 이후 왕실의 피난처 및 보장처로 군사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유수부로 승격되었습니다.

또한 경기-충청-황해도의 수군을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었는데 경기수사가 관할하다가 정조대에 이르러 강화유수가 겸직하게 됩니다.

 

 

이후 5진 7보 53돈대가 설치되었고, 숙종 때 내성과 외성이 모두 개축되었습니다.

강화내성은 강화산성으로 불리우는 7km의 석성이고, 강화외성은 23km길이의 석성과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무기 변천사

 

조선후기에 좀 더 무기를 개발함은 물론 국방을 강화하고, 개방정책을 썼다면 남북으로 갈라지지도 않았고 일본보다 부강한 나라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꿈 같네요.ㅎㅎ

 

4전시실은 근현대 시대의 전쟁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1854년 운요호사건과 강화도 조약에 관한 내용

 

강화도에서의 3.1운동

 

6.25전쟁도 빠질 수 없겠죠?

 

강화도를 지켜낸 해병대와 청룡부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성보에 있는 안해루를 큰 이미지로 전시하여 이곳에서 관군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딸애도 옷을 입고 찰칵~~

 

 

용산에 전쟁박물관은 우리나라 고대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전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강화전쟁박물관은 강화도의 전쟁역사를 다루고 있는 곳입니다.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던 곳인지 강화도만의 전쟁사가 슬피 들려오는 듯 합니다.

 

강화도 전쟁역사와 함께 돈대도 관람할 수 있으니 아이들과 들러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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