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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인천시 여행

양주 가볼만한 곳, 천보산 회암사

by 해피이즈나우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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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가볼만한 곳, 천보산 회암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회암사지에 들렀는데요.

 

[양주여행] 세계문화유산에 도전, 양주 회암사지 / 회암사지박물관

 

역사의 별다른 기록없이 폐사되었던 회암사1821년에 중수한 사찰이 회암사지 옛터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들렀습니다.

 

회암사에는 회암사지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형문화재가 있습니다.

 

보물양주회암사 무학대사탑과 양주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석등이 있고요.

경기도 유형문화재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이 있으니 문화재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원래 회암사지는 1328년(고려 충숙왕 15)에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스님이 인도의 아라난타사를 본떠서 창건한 266칸의 대규모 사찰이었습니다.

그 후 나옹대사가 중건하고, 조선 세조 비인 정희왕후자 정현조로 하여금 다시 중건했었습니다.

 

 

하지만 16세기에 역사의 기록없이 폐사되었던 것을 1821년(조선 순조21)에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 등 세 승려의 부도와 비를 중수하면서 회암사지 옛터에 작은 절을 다시 지은 곳이 지금의 회암사입니다.

 

회암사지 북쪽으로 올라가면 천보산 회암사 입구가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도보로 10여분 올라가면 사찰이 나오는데요.

 

회암사까지 차량이 진입할 수 있으니 요즘같이 더운 날씨엔 걸어가는 것이 힘드니 차를 가지고 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천보산 아래에 자리한 회암사 모습

 

 

양주에는 천보산이란 이름의 산이 여러 개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있는 천보산은 506.6m의 높이로 회암사와 양주 회암사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산입니다.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산이라고 하네요.

 

회암사 입구 쪽에 사찰에서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있으니 커피나 음료를 마시면서 둘러봐도 좋습니다.

카페 가격은 정해지지 않고 보시금으로 성의껏 내면 됩니다.

 

가장 위쪽에 자리한 회암사 대웅전

대한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입니다.

 

회암사지 위쪽에 다시 건립된 사찰입니다.

 

대웅전 내부 모습

 

대웅전 옆 관음전

 

대웅전 위쪽엔 삼성각이 있고, 그 위에 천보산 정상이 보입니다.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회암사 모습

 

대웅전 아래 쪽에 있는 조사당

 

조사당 동쪽으로 산책길이 나 있는데요.

천보산 정상으로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고, 회암사지에서 나온 각종 유형문화재가 있습니다.

 

 

위 사진은 화암사지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입니다.

1326년부터 2년간 고려에 머물면서 불교사상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도 출신의 고승 지공의 사리탑과 석등입니다.

석등은 어둠을 밝히는 조명 외에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고자 하는 불기의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아래쪽에는 보물 389호인 회암사 쌍사자석등과 보물 388호인 회암사지 무학대사탑이 나란히 있습니다.

 

쌍사자석등은 1407년(태종 7) 무학대사탑과 함께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높이 250cm)

 

우리나라 고유의 석등형식인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간주석이 2마리의 사자로 대치된 이형입니다.

또한 목조건축의 지붕에서 유래된 옥개석의 형태, 화사석의 창을 두 방향으로 내고 있는 점 등 연꽃무늬 등의 표현방식에서 조선 전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위에는 보물 388호로 지정된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이 있는데요.

 

무학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407년(태종 7)에 건립되었습니다.

무학대사탑은 조선전기 부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온선사 부도 및 석등이 있습니다.

 

고려 공민왕의 왕사로 인도 고승 지공선사를 따라 국법의 정맥을 이어왔고, 1376년 우왕의 명에 따라 영원사로 가던 도중 신륵사에서 입적한 고승입니다.

(승탑높이 3.5m)

 

 

아래쪽에는 무학대사비가 있습니다.

 

조선 초 태조의 왕사로 조선개국 및 도읍을 한양으로 천도하는데 큰 역할을 한 승려입니다.

비문은 조선 태종 10년(1410)에 변계량이 글을 짓고, 공부의 글씨로 세워졌으나 1821년에 비가 인위적으로 파괴되어 1828년에 새로 세워졌습니다.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면 현재의 회암사가 올망졸망 보이네요.

 

500년 넘게 신비에 가려진 채 숨어 있다가 나타난 회암사의 원래 터였던 회암사지를 구경하고, 회암사에 올라와 역사의 유형문화재를 같이 구경하고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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