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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절두산 순교성지(잠두봉) 나들이

by 해피이즈나우 202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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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순교성지(잠두봉) 나들이

 

 

절두산은 본래 북악산에서 벋어 내려오는 산세가 한강에 막혀 불뚝 솟아오른 모습이 마치 누에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잠두봉으로 불렸는데요.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수형으로 목이 잘려 죽은 곳이라 하여 절두산이라고 불리는 비극의 현장입니다.

당시 8천 여명의 순교자가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져 1956년 천주교 순교자 현양회가 이곳을 매입하고 잠두봉을 절두산이라 부르기 시작한 곳입니다.

 

절두산에는 이런 순교성지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어서 함께 둘러보는 성지순례지로 천주교도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죠.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한국을 사랑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

 

 

절두산 순교성지 모습을 담았는데, 그 안에 있는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절두산순교박물관)은 코로나로 인해 성당과 박물관 출입은 제한되어 있어서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에 세워져 있는 추이라나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 동상 모습입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관람안내

 

관람시간 언제나 방문 가능

휴무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입구에서 버튼 누른 후 관람하러 왔다고 하면 무료주차 가능

 

절두산 순교성지 아래 망원 한강공원 망원 1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바로 위가 절두산 순교성지이기도 합니다.

망원한강공원 주차장 주차비는 30분에 1,000원, 추가 10분당 200원입니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현재는 폐쇄, 개관하면 09:30~17:00

휴무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관람료) 1,000원

주차장 입구에서 버튼 누른 후 관람하러 왔다고 하면 무료주차 가능

 

병인박해 시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린 양화나루터(절두산 순교성지 입구)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꾸르실료회관이 있습니다.

꾸르실료 운동은 세상의 복음화를 목적으로 하는 교회운동으로 1963년 교황 바오로 6세가 교회의 신심운동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신자들이 피와 죽음으로 증거하고 선포하였던 그 신앙과 복음이 오랜 시간 지난 지금 순교자 후손들이 이곳에서 신앙의 교육을 받고 교회의 지도자로, 신앙의 증거자로, 복음의 사도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네요.

 

꾸르실료 회관 앞의 이승훈 베드로(1756~1801) 동상

이승훈은 1784년 북경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서적, 십자고상, 상본 등 많은 성물을 국내에 들여와 정약전, 정약용, 권일신 등과 신자 공동체를 형성하여 한국 천주교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한국순교성인시성기념교육관

 

교육관 앞 휴게터에 전시되어 있는 서슬퍼런 칼

당시의 천주교 순교자들을 참수했던 칼을 형상화하여 전시하고 있는 듯하네요.

 

절두산 순교성지 입구 모습인데요.

순교지라는 아픈 역사가 있지만 지금의 풍경은 평화롭고 멋지게만 보이네요.

 

성녀 마더 테레사

 

상사화라고 불리는 꽃무릇이 피어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이곳 절두산 순교성지에 방문한 기념으로 세운 동상이랍니다.

 

천주교 성당과 절두산순교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지금은 미사도 비대면으로 진행 중이고, 박물관 출입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정말 코로나로 인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ㅜㅜ

 

 

절두산순교박물관은 8개의 전시관에서 순교한 천주교 성인들의 유품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밀랍인형도 만날 수 있다네요.

 

한국 최초의 신부김대건 신부 동상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한국 천주교 성직자들의 수호자이며, 103위 성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1821년 당진에서 신앙깊은 순교자의 집안 장남으로 태어나 성직자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1836년 한국인 최초로 마카오로 성직자 유학을 떠나 신학문과 신학을 배우고 1845년 상해 연안의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된 이후 현지인 성직자를 기대하는 모든 천주교인들의 소망을 이루게 되었죠.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당시 25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기까지 오직 천주교의 진리를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새남터 순교성지와 새남터 기념성당

 

김대건 신부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시성되었습니다.

 

1972년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에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조국근대화의 선구자로 받들어 이 동상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성모동굴 성모상과 봉헌초 모습

 

오성바위

다섯 성인들이 쉬어갔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바위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다블뤼 주교와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황석두, 장주기 등은 처형지인 갈매못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그 길목인 내포땅, 아산군 음봉면 길가의 이 넓적한 바위에 앉아서 신앙을 다짐했다고 합니다.

복자바위라 부르다가 1984년 다섯 분 모두 성인 품에 오른 후 오성바위로 부르고 있다네요.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에는 성경이야기가 음각된 조형물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읽으며 걷는 재미가 있습니다.

 

 

순교성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절두산 성지

천천히 산책하듯 거닐면서 당시의 암울했던 역사에서 목숨까지 던져가며 신앙생활을 했던 그들을 잠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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