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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인천시 여행

[김포여행] 이목의 사당, 한재당

by 해피이즈나우 2021.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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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여행] 이목의 사당, 한재당

 

 

김포여행,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 가려고 나섰는데요.

 

지금은 노후화된 애기봉 전망대를 철거하고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조성공사를 하고 있어서 출입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오는 4월 1일 김포시민의 날에 임시 개관하고, 6~7월 시범개관, 9월에 정식 개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애기봉은 북한과 불과 1.3km떨어진 곳으로 매년 연말이 되면 북한에서 볼 수 있도록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던 곳입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애기봉 전망대 입구쪽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목의 사당인 한재당이 있어서 잠시 구경하였습니다.

 

한재당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무오사화 때 모함을 받아 2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이목(1471~1498)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이목본관은 전주, 호는 한재이며,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김광필과 정여창 등과 동문수학한 인물입니다.

19세에 진사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고, 언론이 정중하고 의기가 준엄해 동료들의 추앙을 받았습니다.

 

1490년 성종이 병환에 있을 때 대비가 무당을 시켜 성균관 벽송정에 음서를 설치하고 굿을 하자 유생들과 함께 제단을 부수고 무당을 쫓아내니 대비가 노해 성종에게 고했으나, 처벌하지 않고 어주까지 하사했다고 합니다.

 

1495년(연산군 1) 별사문과에 장원, 사가독서하고 전적으로 종학사회를 겸임, 이어 영안도평사가 되었습니다.

 

 

1498년 무오사화 때 훈구파(윤필상)의 모함으로 조의제문 사건에 연루되어 김일손, 김광필, 정여창, 권오복 등과 함께 처형되었고, 1504년 갑자사화 때 다시 부관참시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습니다.

 

'다부'를 지어 차의 미묘한 미각이 주는 오공, 육덕을 설파하기도 했는데요.

근처에 김포 다도박물관이 이러한 이목의 다도를 도입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김포 다도박물관, 정원과 조각공원이 예쁜 박물관

 

홍살문 옆에 있는 건물인데, 한재당을 관리하는 처소로 보입니다.

 

무오사화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김일손이 사초에 실었던 일로 발생한 사건인데요.

1498년 실록청이 개설되어 성종실록 편찬이 시작되자 조의제문이 세조의 즉위를 비방하는 것이라며 유자광은 김일손이 대역부도를 꾀했다고 연산군에게 고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연산군은 김종직과 그의 문인들을 대역죄인으로 규정하고 처형하였고, 훈구파는 권력기반을 굳건히 하게되고, 신진사림파는 중앙정계에서 물러나고 말았던 사건입니다.

 

경기도 기념물 4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재당 사당은 홍살문과 외삼문, 내삼문, 사당인 정간사를 일렬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한재당 앞에 구사당은 맞배지붕 목조와가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일주문과 담장이 둘러 있었으나 현재는 담장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현재의 신사당은 1974년 후손들에 의해 이곳에 다시 건립된 것입니다.

 

한재당 앞에 있는 정자인 다정

바로 앞이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 모습

 

이목의 사당인 정간사

 

이곳엔 이목의 위패와 숙종 43년(1717)과 경종 2년(1722)에 추증한 교지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내부는 공개되지 않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재당 위쪽에는 많은 무덤들이 있는데, 이목의 자손들과 관계된 무덤이라는 추측만 됩니다.

문인석이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조선시대 학자들이 아니었나 싶네요.

 

무덤에서 바라본 한재당 모습

 

젊은 나이에 당파싸움으로 희생을 당한 이목.

김포에선 차를 가장 먼저 들어온 인물로도 알려진 학자입니다.

 

나중에 애기봉에 간다면 잠시 들러서 구경하고 가면 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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