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영릉, 야외 전시물을 통한 세종대왕의 발명품들
여주 영릉에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많이 변했더군요.
기종의 주차장이었던 곳은 정원과 함께 세종대왕의 발명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세종대왕 동상이 늠름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전에 없던 여주 영릉 앞에 있는 야외전시장을 통해서 세종대왕의 발명품들을 정리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종대왕 대의 발명품들이 되겠네요.
당시 조선시대의 최고의 발명가라고 할 수 있는 장영실의 발명품이 대부분인 듯합니다.
여주 영릉 입구에 있는 세종대왕 야외전시 모습입니다.
세종대왕 동상과 좌우로 세종대왕 때 발명된 여러 과학, 농사 발명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은 1397년(태조 6),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 이도로 태어나 충녕군에 봉해지고, 맏형 양녕대군이 폐세자 되면서 1418년(태종 12)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에 22세의 나이로 조선 4대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은 재위 32년간 유교정치의 기틀을 마련하고,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다양한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고,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던 임금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였고, 과학자들과 함께 해시계, 혼천의, 측우기 등의 과학기구 발명, 집현전 설치, 아악 정비, 4군 6진 개척, 대마도 정벌, 활자 제조 및 농업장려 등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종대왕 시절의 장영실(1390경~?)은 조선시대 최고 과학자로 칭송받는 인물입니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온 귀화인이고 어머니는 관노라서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났습니다.
장영실의 뛰어난 재주가 알려져 태종이 그를 발탁하였고, 세종 즉위 후 명나라에 가서 천문관측시설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인 자격루를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노비신분에서 종 3품까지 오르며 간의대, 흠경각, 앙부일구 등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영실의 감독하에 만들어진 세종의 가마가 부서져, 장영실은 불경죄로 관직에서 파면되었고, 그 뒤 장영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여주 영릉 야외 전시마당에 설치된 조형물로 세종대왕 때의 발명품들을 알아보겠습니다.
혼상
하늘의 별자리를 둥근 공 모양 위에 표시하여 별자리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도록 세종 19년(1437)에 만든 천문 관측기기입니다.
둥근 혼상을 회전시키는 축은 지구의 자전축인 북극과 남극방향이 일치하도록 설치하여 하룻밤 동안 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종 때 만든 혼상은 현재 남아있지 않아 문헌을 기초로 실제보다 크게 재현해 놓은 모습입니다.
관천대와 적도의
관천대는 천문관측 기기를 올려놓던 곳입니다.
세종대왕은 경복궁 안에 천문 관측기기를 설치하여 관리들에게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창경궁 관천대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창경궁 관천대 모습은 아래 링크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도의는 조선 후기의 전문 관측기구로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쉽고 편리하게 관측할 수 있도록 연구하여 만든 기기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유물이 없어 남병길의 저서 '성경'에 남아있는 그림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혼천의
혼천의는 세종 15년(1433)에 만든 해와 달, 별과 오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를 관측하던 기기입니다.
이것은 현종 10년(1669)에 송이영이 만든 혼천의 및 혼천시계 중 혼천의 부분을 2.5배 정도 확대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간의
간의는 고도와 방위, 낮과 밤의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세종 14년(1432)에 만든 천문관측 기기입니다.
이것은 문헌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소간의
소간의는 세봉 14년(1432)에 만들어진 간의를 옮길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개량한 천문 관측 기기입니다.
소간의는 해와 달, 행성과 별의 위치, 고도와 방위를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우리 선조들의 독창적인 기구로 문헌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규표
규표는 세종 19년(1437)에 만든 것으로 해의 그림자를 재어 24절기를 알 수 있게 만든 천문 관측기기입니다.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 동지이고 짧은 날이 하지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문헌을 바탕으로 실제 크기의 1/10로 축소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현주일구
현주일구는 세종 19년(1437)에 만든 휴대용 해시계입니다.
남북을 잇는 가는 줄을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같게 하도록 추를 달아 팽팽하게 당긴 후 줄의 그림자를 둥근 시반에 나타나게 하여 그림자가 가리키는 눈금을 보고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야외에 전시하기 위해 문헌에 기록된 크기의 7배로 확대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정남일구
정남일구는 세종 19년(1437)에 만들어졌고,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려주는 해시계입니다.
지남침을 쓰지 않고도 남북의 방향을 정확히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가리키는 해시계계라는 의미로 정남일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것 또한 문헌을 바탕으로 3배로 확대하여 만든 것입니다.
천평일구
천평일구는 세종 19년(1437)에 만든 휴대용 해시계입니다.
용기둥에서 남쪽 못까지 연결된 실이 하늘의 적도면과 나란하게 놓여 있는 시반면 중앙을 수직으로 통과하며 햇빛에 의해 시반면 위에 나타난 그림자로 시각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 크기보다 7배 확대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자격루
자격루는 세종 16년(1434)에 만든 물시계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저절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가 사용되었습니다.
자격루의 작동원리는 맨 위의 큰 물그릇에 있는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더 아래쪽에 있는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듭니다.
이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있는 살대가 점점 올라가 지렛대 장치를 건드리면서 끝이 있는 쇠구슬을 굴려 차례로 종과 북, 징을 쳐서 시간을 알려줍니다.
이것은 창경궁 자격루를 본떠 만든 것입니다.
일성정시의
일성정시의는 세종 19년(1437)에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모아 낮과 밤 언제든지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천문기기입니다.
낮에는 해시계의 원리로, 밤에는 별시계의 원리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이죠.
세종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현재 남아있지 않아 문헌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일구대
일구대는 세종 때에 만들어진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올려놓는 받침대입니다.
세종대왕은 서울의 혜정교와 종묘 앞에 일구대를 만들고 앙부일구를 설치했습니다.
이것은 현재 경복궁 교태전 아미산에 있는 앙부일구대를 본떠 만든 것입니다.
앙부일구
양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처음 만들어서 조선말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입니다.
앙부일구란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솥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그림자가 비치는 면이 오목하다 해서 오목해시계라고도 불립니다.
오목한 반구 안쪽에는 영침과 달력 역할을 하는 가로줄 13줄과 시각을 알려주는 세로줄 48줄이 있습니다.
영침의 그림자가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와 시각을 나타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태조 4년(1395)에 북극을 중심으로 하늘의 좌표에 따라 별 1,467개의 위치를 커다란 원 안에 표시하여 만든 천문도입니다.
윗부분에는 해와 달의 운행기록과 별자리 그림, 아랫부분에는 우주관, 제작배경, 과정, 만든 사람의 이름과 만든 때가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을 본떠 만든 것입니다.
측우기
측우기는 세종 23년(1441)에 비의 양을 재고자 만든 기기입니다.
이전에는 땅속에 스며든 빗물의 깊이를 자로 쟀었는데, 쇠로 된 원통형 측우기를 만들어 비의 양을 정확히 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측우기 중 가장 오래된 금영측우기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수표
수표는 세종 23년(1441)에서 세종 24년(1442)에 걸쳐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서울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해 하천의 물높이를 재던 기기입니다.
여름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썩어서 나중엔 돌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세종대왕기념관에 있는 서울 청계천 수표를 본떠 만든 것입니다.
풍기대
풍기대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잴 때 쓰는 바람 깃발을 세워 놓던 받침대입니다.
맨 위에 깃대를 세워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쟀습니다.
이것은 18세기에 만든 창경궁 풍기대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과거 주차장이었던 이곳을 이렇게 정원과 전시공간으로 만들어두니 좋네요.
걸어 들어오는 길이 멀어졌지만, 더욱 볼거리가 많아졌습니다.
세종대왕 때에 참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의 강국이 꿈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부심을 가지며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여주 영릉에 들리면 야외전시도 필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따뜻해졌으나 산책하면서 둘러보기에도 좋은 날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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