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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마지막왕 공양왕과 그가 묻힌 공양왕릉

by 해피이즈나우 2021.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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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마지막왕 공양왕과 그가 묻힌 공양왕릉

 

 

고양 역사나들이 두 번째 이야기는 쓸쓸한 죽음을 당한 고려의 마지막 왕공양왕과 그가 묻힌 공양왕릉 이야기입니다.

 

고려왕릉인 공양왕릉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34대 공양왕(1345~1394)과 왕비 순비 노씨가 묻혀있는 곳입니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왼쪽이 공양왕, 오른쪽이 왕비인 순비 노씨의 능입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모든 정권을 잡자 고려 32대 왕인 우왕을 폐위시키고 죽였으며, 이후 9살이던 33대 창왕을 왕위에 앉혔으나 역시 이성계가 2년 만에 폐위시키고 죽이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34대 왕으로 공양왕을 앉히려고 하자 마지못해 왕위에 앉게 된 공양왕의 최후 역시 비참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공양왕은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인 1392년에 공양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원주, 삼척으로 옮겨진 후 1394년(조선 태조 3)에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 1416년(태종 16)에 다시 왕으로 복권되어 무덤도 왕릉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과 고양군지에 공양왕릉이 고양지역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현재 이곳이 공양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양왕릉은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 65-1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별도로 관리하는 분이 없고 항상 개방되어 있어 언제나 관람이 가능합니다.

 

공양왕은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성계는 우왕과 창왕을 죽이고, 20대 신종의 6대손인 왕요를 찾아 왕위를 맡긴다.

마흔다섯이었던 그는 이렇게 말했자고 한다.

'나는 평생 먹는 것, 입는 것이 풍족했고 시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 나이에 왜 내가 이런 큰일을 맡아야 한단 말인가?'

 

그는 결국 2년 8개월 만에 고려가 아닌 조선의 왕 이성계에게 왕의 자리를 넘기게 된다.

공양왕은 이성계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을 예감하고 밤을 틈타 송도개성의 궁을 탈출해 무작정 남쪽으로 내달렸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사방이 컴컴해졌을 때 산 저쪽에 불빛이 보였다,

어슴푸레한 그곳을 살펴보니 절이었다.

문을 두드리니 한 스님이 나와 물끄러미 왕의 행색을 살피더니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렀다.

'어찌하여 천하의 주인이 집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셨는지요?'

 

하지만 쫓기는 임금을 숨겨 주었다가는 자칫 화를 입을 수도 있어 스님은 공양왕에게 '저희 절은 위험하니 동쪽으로 10리 정도 떨어진 한 누각에 가 계시면 저희들이 매일 수라를 갖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고, 공양왕은 그 누각으로 가 절에서 날라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하였다.

이로 인해 식사라는 명칭이 유래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양왕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는데, 그 후 왕이 평소에 귀여워하던 청삽살개가 어느 연못 앞에서 자꾸 짖다 돌연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사람들이 못의 물을 퍼내어 보니 옥새를 품은 공양왕이 왕비와 함께 죽어 있었다.

비통에 잠긴 친족들은 연못 뒤에 조그마한 봉분을 만들어 왕의 시신을 안장하였다.

 

그 후 이곳을 왕릉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왕릉에선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개 모양의 석상이 있는데 이는 죽음으로 왕의 시신이 있는 것을 알린 충견 삽살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민왕의 왜소하고 소박한 능은 국운이 다한 고려왕조의 비애를 느끼게 한다.

 

공양왕릉은 두 개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쌍릉이며 왕과 왕비의 봉분 앞에 각각의 묘표가 있습니다.

비석과 석물 등을 볼 때 조선 초에 처음 능을 만들 때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두 봉분 가운데에 조선 고종 때에 세워진 표석이 있고, 이 밖에도 상석과 팔각 모양의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수(삽살개)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왕릉이라 고려시대 왕이지만, 조선시대 왕릉의 형식을 띄고 있는 셈이며, 석물들 크기가 작은 것이 특징입니다.

 

공양왕릉 뒤편에는 공양왕의 외손들인 정씨와 신씨의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양왕릉에서는 매년 가을 고양 시민과 유림, 후손 등이 함께 추향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공양왕의 무덤은 이곳뿐만 아니라 그가 살해된 삼척 지역에도 무덤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고려 왕실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삼척 공양왕릉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고양 공양왕릉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삼척 공양왕릉은 구전되어 오는 것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고양 공양왕릉에 그의 시신이 묻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요.

아마도 공양왕의 왕자와 시녀 또는 그가 타던 말 무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고려왕릉은 처음 보는 것인데요.

남한에는 몽고의 침입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하여 38년동안 이곳을 수도로 삼았고, 그때 만들어진 고려왕릉 5기가 강화도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기회되면 언젠가 강화도 고려왕릉을 구경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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