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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인천시 여행

여주 신륵사 보물 등 문화재 탐방

by 해피이즈나우 202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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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보물 등 문화재 탐방

 

 

신륵사 신라시대의 명승인 원효대사가 창건했는데 설화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곳이라고 알려준 후 사라지니, 그 말에 따라 연못을 메워지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원효대사가 7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들이니 아홉 마리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고려 때에는 신륵사 내 등대 위에 서 있는 전탑 때문에 벽절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신륵사는 창건 이래로 보제존자 나옹화상과 같은 고승대덕이 지냈던 곳이며 더불어 그 외관이 뛰어난 사찰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여주 가볼만한 곳, 신륵사

 

이런 천년고찰이라 신륵사에는 국가 보물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재가 정말 많은 곳입니다.

이에 신륵사가 품고 있는 보물 등 문화재 탐방을 떠나 보겠습니다.

 

신륵사 전경

 

신륵사에는 보물 8점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3점 등 문화재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여주 신륵사 조사당, 다층석탑, 다층전탑, 보제존자석종, 보제존자자석종비, 대장각기비, 신륵사사보제존자석불앞석등,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래삼존상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신륵사의 보물 등 문화재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보물 제225호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신륵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탑으로 2단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로 여러 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것입니다.

기단에서부터 탑심부까지 전부 돌을 한 장씩 쌓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바닥돌 윗면에는 연꽃을 돌려 새겼고,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 조각은 물결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습니다.

위층 기단의 모서리에는 꽃 모양이, 각 면에는 용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8층 몸돌 위에 지붕돌 하나와 몸돌 일부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층수가 더 될 것으로 보이지만, 8층 탑신 아래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알수 있듯이 많이 상한 모습입니다.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은 전체적으로 국보 제2호로 지정된 서울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십층석탑과 돌의 재질, 조가기법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신륵사는 1472년(성종 3)에 대구모로 새 단장을 했는데, 이 탑도 그때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탑골공원과 원각사지십층석탑,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

보물 제226호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은 아래로 남한강이 보이고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전탑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을 쌓은 탑을 말하며, 우리나라엔 경기도와 경북 안동지역에 몇 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 탑은 2단으로 기단을 쌓고, 다시 3단의 계단을 쌓은 후 여러 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탑입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탑신부는 6층까지 쌓아 올렸는데, 그 위에 다시 몸돌 하나가 올라가 있어 7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전탑과 달리 몸돌에 비하여 지붕들이 매우 얇아 전제적인 인상이 독특한데요.

지금 탑의 형태가 원래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합니다.

탑의 북쪽엔 수리할 때 세운 비가 전해오는데, 그 비에는 1726년(영조 2)에 고쳐지었다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 탑이 세워진 연대 추정은 아려우나 벽돌의 문양 등을 볼 때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물 제230호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는 고려 말 신륵사에 대장각을 만든 후 그 내력을 새긴 비입니다.

이색이 공민왕과 그의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보제존자 나옹 화상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고려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이곳에 2층의 대장각을 지었습니다.

 

비문은 예문관 재학이었던 이숭인이 짓고, 글씨는 진현관 제학이었던 군주가 썼습니다.

뒷면에는 대장경 인쇄와 대장각 건립에 참여했던 승려와 신도 명단이 적혀 있습니다.

 

길쭉한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비의 몸체를 세운 후 지붕들을 얹은 형태이며, 몸체의 양옆에 있는 돌기둥이 몸체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습니다.

 

비가 세워진 시기는 1383년(고려 우왕 9)이며, 통일신라시대 유행했던 거북 모양의 비 받침과 용의 머리가 새겨진 비 머리는 고려 후기로 오면서 사각형 받침과 지붕 모양의 머릿돌로 간략화되었는데, 이 비가 그러한 변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절 안의 중심부에 위치합니다.

1678년(숙종 4)에 지어진 후 1797년(정보 21)에 수리하여 1800년에 완공했습니다.

 

 

극락보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인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데, 이러한 구조를 다포라고 합니다.

 

안에는 불단 위로 나무로 만든 아미타여래삼존상이 모셔져 있고,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또한 1773년(영조 49)에 제작한 범종과 후불탱화가 있습니다.

 

극락보전의 정문 위에는 나옹화상이 쓴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천추만세' 현판이 있는데, 입체감 있게 쓰여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이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신륵사 극락보전은 조선 후기에 크게 수리되었으나 부분적으로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1791호 여주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 삼존상

 

신륵사 극락보존에 모셔진 목조아미타 삼존 여래 좌상으로, 가운데엔 아미타여래, 좌에는 대세지보살, 우에는 관세음보살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여래는 앉아있고, 양 옆은 서 있는데, 유난히 높은 육계, 이국적인 얼굴, 옷 주름 표현의 독창성 등의 조형적 특징은 다른 불상에서 볼 수 없는 특징입니다.

 

 

불상 내부에서 복장 원문이 발견되어 1610년(광해 2)승려와 일반 백성 100여 명이 마음을 모아 삼존상을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특히 인일이라는 새로운 조각승의 이름이 확인되어 17세기 초기 조선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네요.

 

보물 제180호 여주 신륵사 조사당

 

여주 신륵사 조사당은 낮은 기단 위에 앞면 1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조선 예종 때 지은 것입니다.

신미산은 봉미산 기슭에 있는 조선시대 절로 원래는 신라시대에 지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는 상태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인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데, 이러한 구조를 다포라 하며, 앞면에는 6짝의 문을 달아 모두 개방할 수 있게 하였고, 옆면에는 앞 1칸만 문을 달아 출입구를 만들었습니다.

 

조사당은 아담하지만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조선 전기의 조각기법이 드러난 건물입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여주 신륵사 삼화화상진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7호 여주 신륵사 건륭삼십팔년명 동종

 

조사당은 절에서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셔 놓은 건물로 신륵사 조사당에는 삼화상진영이 있는데, 불단 중앙에는 지공 화상이, 좌우에는 무학대사와 나옹화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삼화상진영은 신륵사의 중요한 인물인 나옹 화상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주요한 작품인데요.

현재 전국 사찰에 전하는 1000여 점의 진영 가운데 삼 화상을 그린 진영은 매우 드물어 희귀한 자료입니다.

 

여주 신륵사 건륭삼십팔년명 동종은 1773년(영조 49)에 만든 동종으로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형식이면서 신륵사 범종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사당 위쪽 언덕에는 고려 우왕 2년인 1376년에 나옹 화상이 입적하면서 만든 사리탑이 있습니다.

 

보물 228호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보물 229호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보물 231호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


이곳 나옹 화상의 사리탑을 중심으로 세 개의 보물이 있습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존자석종에는 종 모양의 탑신을 안치한 단층의 탑으로, 이런 석종 형식은 인도의 불탑 형식을 가미한 고려 말기의 석종형 부도형식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보물 228호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여주 신륵사 보제존존자석종은 신륵사 뒤편에 모셔져 있는 보제존자 나옹의 사리탑으로, 널찍하게 마련된 단층 기단 위에 받침 2단을 쌓은 후 종 모양의 탑신을 올린 형태입니다.

 

 

기단을 돌을 쌓아 넓게 만들었고, 양쪽과 양옆에는 계단이 있습니다.

탑신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고,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불꽃무늬를 새긴 큼직한 보주가 솟아 있습니다.

 

이 탑은 나옹이 양주 회암사 주지로 있다가 왕의 명을 받아 밀양으로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1376년(고려 우왕 2)에 입적하게 되면서 우왕 5년에 제자들이 절 뒤에 세운 것입니다.

 

보물 231호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은 보제존자 나옹이 사리탑을 밝히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 팔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베 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이 있고, 위에는 지붕들과 머리장식이 있습니다.

 

받침의 표면 전체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화사석의 각 면에는 무지개 모양의 창, 나머지 공간에 지천상과 이무기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석등은 보제존자 석종 및 석종비와 함께 세워진 것으로 세워진 연대가 확실하고, 고려 후기 석등의 대표적 양식을 갖춘 작품입니다.

 

보물 229호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는 신륵사에 모셔진 나옹의 석종형 승탑 옆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나옹은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여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한 승려입니다.

 

비는 3단의 받침 위에 비석의 몸체를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받침 부분의 윗면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대리석으로 다듬은 몸체의 양옆에는 화강암 기둥을 세웠으며, 지붕돌은 목조 건물의 기와지붕처럼 막새기와와 기왓골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비는 1379년(고려 우왕 5)에 세워진 비로, 비문의 내용은 당대대의 문장가인 이색이 짓고, 비문의 글씨는 당대의 유명한 서예가인 한수가 썼는데 부드러운 필치의 해서체입니다.

 

전체적으로 고려 후기의 간략화된 비의 형식입니다.

 

 

여주 신륵사에 보물 등 문화재가 참 많다는 사실을 세 번째 방문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잘 보존되기를 바라며, 신륵사에 가시면 자세히 관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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