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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남산예장공원과 이회영기념관 개장, 옛 중앙정보부 터 이제 시민품으로~

by 언제나 휴식같은 친구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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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장공원과 이회영기념관 개장, 옛 중앙정보부 터 이제 시민품으로~

 

 

군부독재 시절 각종 정치조작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에 대한 고문이 이워졌던 옛 중앙정보부 터가 시민들의 공원인 남산 예장공원으로 개장했습니다.

 

서울광장 두 배 넓이의 남산예장공원은 2015년부터 추진해온 재생사업을 마치고 어제 개장을 했는데요.

남산예장공원 터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맺힌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침략의 교두보였던 통감부와 통감관저가 있었고, 군부독재 시절엔 중앙정보부가 자리했던 곳이죠.

수많은 운동권 학생들의 고문이 이루어진 곳이며, 개장하기 직전까지는 서울시청 남산별관으로 운영한 곳입니다.

 

지난 6월 8일, 남산 예장자락에 개장한 남산예장공원 이야기를 서울시 내 손안의 서울의 기사를 인용해서 정리했습니다.

 

2009년부터 남산 르네상스를 진행했는데 12년 만에 남산예장공원 개장으로 그 결질을 맞게 되었습니다.

남산의 자연경관을 가리고 있던 옛 '중앙정보부 6국'(서울시청 남산별관) 건물과 TBS교통방송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과 쉼터로 조성한 것입니다.

 

남산예장공원은 명동역 1번출구 후면쪽부터 드라마센터와 사울시소방재난본부 입구까지 이어지는 곳을 말합니다.

건물이 철거된 자리에 나무와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공원 지하에는 녹색순환버스 환승센터와 대형버스 주차장, 그리고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을 기념하는 공간도 들어섰는데요.

남산예장공원 개장식과 함께 우당 이회영 기념관을 개장하던 날,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첫 공식행보를 보인 탓에 예장공원 개장보다 윤석열의 행보에 더 조명이 비춰진 기분입니다.

 

남산예장공원 개장으로 이제 공원 보행로를 통해 명동에서 남산까지 더욱 편안하게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 남산 예장자락은 조선시대 군사들의 무예훈련장(예장)과 녹천정, 주자소 등이 있던 곳으로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곳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침략의 교두보인 통감부와 통감관저가 설치되고 일본인 거주지가 조성되면서 훼손됐고요.

1961년 이후에는 중앙정보부 건물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립된 장소가 됐었죠.

 

1세기 만에 남산예장공원이 개장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공원 하부(지하)에는 남산 일대를 달리는 친환경 ‘녹색순환버스’가 정차하는 환승센터와 40면 규모의 관광버스 주차장이 생겼습니다.

 

온 집안이 전 재산을 들여 독립운동에 나섰던 우당 이회영과 6형제를 기념하는 공간인 ‘이회영기념관’도 개관했습니다.

개관을 기념해 100년 전 우리 독립군의 봉오동‧청산리 대첩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체코군단의 무기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특별전이 열립니다. 

 

‘남산예장공원’ 입구에 조성된 진입광장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명동에서 공원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공원 조성 전에는 명동에서 남산을 가기 위해 지하차도 또는 건널목 건너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하는 불편이 있었습니다. 

지상 녹지공원에는 남산의 고유 수종인 소나무 군락을 비롯해 18종의 교목 1,642주, 사철나무 외 31종의 관목 62,033주 등 다양한 나무를 식재해 풍성한 녹지를 회복했습니다. 

다양한 산책코스도 조성돼 녹음 속에서 휴식할 수 있게 되었다네요. 

녹지공원에는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자리에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역사를 기억하는 ‘기억6’이라는 공간을 조성, 현재 전시공간으로 운영 중입니다.

‘남산예장공원’ 조성과정에서 발굴된 조선총독부 관사 터의 기초 일부분을 그대로 보존한 유구터도 있습니다.

 

공원 하부 지하공간에 조성된 ‘이회영기념관’에서는 ‘난잎으로 칼을 얻다’라는 이름의 상설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후손이 기증한 유물 42점 등이 전시됩니다.. 

난을 그려 팔아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던 이회영의 묵란과 낙관, 가명으로 보낸 친필 편지봉투, 신흥무관학교 교관 및 학생들의 사진과 약력 등이 전시되고, 자필로 쓴 경주이씨 족보도 볼 수 있답니다.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이 남긴 항일독립운동 기록 ‘서간도시종기’ 육필 원고도 전시됩니다. 

우당 이회영과 6형제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전 재산을 처분해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이주,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평생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등 독립운동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기까지 3,500여 명의 독립투사를 길러냈으며, 이들이 주축이 돼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의열단, 광복군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개관특별전으로 독립군 연합부대가 거둔 불멸의 승전인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기념하는 ‘체코무기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체코군단공동체로부터 소총 등 당시에 사용됐던 무기(소총‧권총 등)와 지도, 군복 등 28점을 무상대여 받아 전시에 올리게 됐다고 합니다.

독립군 연합부대는 1920년 블라디보스톡에 머물던 체코군단(Československé legie)으로부터 다수의 무기를 획득했고,  이 무기는 봉오동 전투(1920년 6월)와 청산리 전투(1920년 10월)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100여년 만에 시민품으로 돌아오는 남산예장공원에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기념관도 생겨 더욱 의미가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언제 시간되면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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