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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 민족불교와 정화불교의 성지

by 언제나 휴식같은 친구 202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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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 민족불교와 정화불교의 성지



종로구 북촌을 지나가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이라고 적힌 전시관이 있어 잠시 관람을 했습니다.

선학원이란 불법의 정통인 선리를 탐구하고, 선물을 선양함으로써 불교진흥을 이룩하고자 만공, 용성, 혜월, 도봉, 석두, 남천 상월 등 여러 고승대덕들이 중심이 되어 1921년에 만든 종교인데요,

선학원은 일제식민지에서는 항일 민족불교의 성지, 광복 후에는 왜색 불교를 청산하는 정화불교의 산지로 현재의 대한불교 조계종의 모태라고 합니다.
불교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학원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난해하긴 하지만, 민족불교와 정화불교를 내세우고 있다고 하니 선학원이란 종교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선학원이 있는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을 둘러봤습니다.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은 종로구 안국동, 덕성여고 아래 골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회기념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30~18:00,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마감
휴무일(휴관일) 매주 월요일, 공휴일인 경우 정상개관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없음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회기념관 담벼락에는 만해 한용운의 시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3.1 운동 이후 일제강점기에 한국 불교는 크게 두 흐름으로 전개되었다고 합니다.
식민지 불교정책의 핵심인 사찰령을 철페하고 자주적인 종단을 건설하려는 노력과 한국 전통불교의 수행과 깨달음의 핵심인 선의 전통을 수호하려던 노력입니다.

일제하 한국 불교계의 주체적인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한국불교를 일본 조동종으로 병합하려는 원종의 시도에 저항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선학원인 것입니다.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회기념관 모습

1921년 11월 30일 남전, 도봉, 석두스님 등이 만해 한용운 스님을 중심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민족불교의 왜색화와 세속화를 막고 사찰령을 철페하여 한국불교의 정맥을 수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선학원을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식민지 불교정책에 항거하는 민족불교 수호를 천명한 종교입니다.

선학원 설립배경

1922년에 선우공제회를 창립했는데 이는 식민지 불교정책에 항거하는 민족불교를 천명한 것이며, 1934년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1935년에 조선불교 선종을 창립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한국 불교의 전통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1955년 전국승려대회를 기점으로 종권을 비롯한 전국 각 사찰의 운영권이 비구승 쪽으로 넘어가는 국면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선학원을 중심으로 한국불교의 전통과 민족불교를 수호하고자 했던 노력은 1962년 통합종단 대한불교 조계종의 탄생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근대불교 연표

민족대표 독립선언 기록화

1962년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정부에서 추서한 훈장 모습

만해 한용운 공훈록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1894년 동학혁명에 가담했고, 24세에 설악산 백담사 주지 연곡스님을 은사로 사문이 됐고, 이때 계명은 봉완. 이후 고성군에 있는 건봉사 만화스님 법을 이어 법호를 용운, 아호를 만해라고 했습니다.

만해 한용운 기념관과 사명대사(사명당) 의승병기념관(고성 건봉사)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불교를 구하기 위해 영호, 진응, 금봉스님 등과 함께 임제종 운동을 전개했고, 만주를 돌아본 후 다시 백담사에 머물게 된 스님은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하며 ‘신불교운동’을 제창했습니다.
이후 경성에서 '유심'을 창간했고, 3·1 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했죠.

이로 인해 스님은 일제에 의해 체포되었다가 1921년에 출옥하였습니다.
출옥 직전, 임제종 종풍의 계승과 아울러 출옥 후 만해스님의 주석처를 마련하고자 수좌스님들은 최창훈 외 다수 신도에게 기부를 받아 안국동 40번지에 선학원을 마련, 이후 스님이 머문 선학원은 항일운동과 불조정맥을 전승하는 민족불교의 주된 터전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1922년 선학원 ‘선우공제회’ 창립에 스님은 동참하였습니다.

1926년 6월 7일, 안국동 40번지를 포위한 종로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지금의 선학원 정문 앞에서 6·10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강제 검거되었습니다.
1926년은 또한 만해스님이 근대 한국시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시집 '님의 침묵'을 펴낸 해이기도 하는데요.
이듬해 1927년에는 신간회를 발기하고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 총동맹으로 개편하였습니다.
1931년 선학원에서 발행한 '선원'의 주요 책임자를 역임하며 대중교화에 매진하였고, 1933년에 심우장에 기거, 해방을 앞둔 1944년 6월 29일에 법납 40세(세수 66세)로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서 입적했습니다.

기미 독립선언서 공약 삼장과 그 앞에 놓인 동상은 만해 한용운 스님입니다.

불교의 근대화와 독립운동

정화불교의 태동

정화불교와 조계종의 태동

민족불교, 정화불교의 성지, 선화원

2층에는 선학원 법당이 있어서 잠시 구경했습니다.

2층 복도에 있는 범종


선학원이라는 것은 예전이 어렴풋이 듣기는 했지만, 그 실체는 몰랐으나 대한불교 조계종의 전신이라고 하니 한국불교에서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일본 불교에 통합되지 않으려는 의지있는 항거와 정화불교를 지향했다고 하니 대단한 스님들의 업적으로 현재의 한국불교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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