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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권 여행

영월의 상징이 된 조선 6대왕, 영월 장릉 단종역사관

by 해피이즈나우 202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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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상징이 된 조선 6대왕, 영월 장릉 단종역사관

 

 

조선 6대 임금(왕)이었던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에서 나와 곧바로 영월 장릉으로 이동했습니다.

 

단종 유배지, 영월 청령포 (입장료 및 관음송과 망향탑)

 

영월 장릉을 관람하기 전에 입구로 들어서면 장릉 단종역사관이 있어서 먼저 관람했습니다.

단종역사관은 2002년에 조선 6대 왕인 단종(재위 1452~1455)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되새기기 위해 세운 전시관인데요.

단종의 세자 즉위부터 단종대왕으로 복권되기까지의 일대기를 차근차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영월 장릉에 있는 단종역사관

 

영월 장릉 및 단종역사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09:00~18:00(30분전 입장마감)

휴무일(휴관일) 연중무휴

입장료(관람료) 어른 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경로 무료

주차장 주차요금 무료

관람 소요시간 30분 ~ 50분

 

선현국가표준영정 100호인 단종의 어진

 

조선왕릉 계보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정순헌철고순

단종은 조선시대 제6대 임금으로 재위기간은 1452~1455까지 3년 2개월입니다.

 

단종의 탄생 기록

 

세종의 적장손이자 문종과 현덕왕후의 적장남으로 1441년에 태어났고, 1448년(세종 30년) 8세에 왕세손에 책봉되었습니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이 태어나자마자 산후 후유증으로 죽었고, 할아버지 세종과 할머니 소헌왕후도 어렸을 때 죽었습니다.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10세에 세자에 책봉, 1452년 아버지 문종이 지병인 등창의 재발과 악화로 사망하자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며, 1454년 14세에 송현수의 딸인 정순왕후와 가례를 올렸습니다.

 

단종이 왕위에 오른 경복궁 근정전 모습

 

단종실록

 

조선전기 제6대 왕 단종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으로 1452년 5월부터 1455년 윤 6월까지 단종의 재위 3년 2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14권 6책, 정식 이름은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였다가 숙종대에 단종이 복위되면서 단종대왕실록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정순왕후 책봉

 

단종은 문종의 3년상이 끝나기도 전인 1454년(단종 2) 1월에 15세였던 송현수의 딸과 혼례를 올렸습니다.

당시 성삼문은 예법에 어긋난다며 반대했으나 왕실 내부를 장악하려는 수양대군에 의해 강압적으로 치러졌다고 합니다.

 

계유정난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이 권람, 한명회, 신숙주 등과 함께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와 황보인 그리고 동생 안평대군 등 단종의 측근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학한 정변입니다.

 

단종의 선위

 

단종은 자신을 보호하던 금성대군 한남군 마저 수양대군에 의해 유배 보내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는데요.

결국 경복궁 경회루 아래에서 수양대군에게 어보를 건네고 상왕이 되어 창덕궁으로 물러났습니다.

수양대군은 근정전에서 조선 7대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사육신과 단종복위운동

 

1456년(세조 2) 6월 1일 상왕이었던 단종은 명나라 사신을 창덕궁으로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려고 했는데요.

이를 기회로 하위지, 성삼문, 류성원, 이개, 유응부,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세조를 처단하고 상왕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김질의 밀고로 실패하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노량진에는 당시 3일간 효수되었는데, 어두운 새벽을 틈타 생육신의 한 사람이던 김시습이 이들의 시신을 수습,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 이들의 묘를 만들게 되는데, 이 묘는 사육신묘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사육신공원과 사육신묘, 사육신과 생육신 이야기

 

생육신

 

죽음을 당한 사육신 외에 세조 즉위 후 벼슬을 하지 않고 평생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신하를 생육신이라고 합니다/

김시습, 남효온, 원호, 조려, 성담수, 이맹전 등이며, 이들은 사육신의 충절을 따라 관직에 오르지 않고 은둔하며 지냈던 지식인들입니다.

 

단종의 유배

 

사육신 등의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난 시점에 명나라에서는 황제가 폐위되고 상황 영종이 복위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의 단종복위운동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조선이 명나라와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것 같습니다.

 

명나라의 상황 복위사건은 세조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끼게 했는데요.

세조는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 등이 단종복위를 도모했다고 꾸며, 1457년(세조 3) 6월 21일에 상왕인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아울러 단종의 어머니인 문종의 왕비인 현덕왕후를 서인으로 삼고 그 능인 소릉을 파헤쳐 관곽을 내다 버린 패륜을 저질렀습니다.

 

금성대군과 단종 복위운동

 

경상도 순흥에 유배로 가 있던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은 1457년(세조 3) 7월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영월에 있는 노산군을 복원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는데요.

역시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지고 노산군에게는 사약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결했으니 단종의 나이 17살이었습니다.

 

충신들의 두 번의 단종 복위운동으로 말미암아 단종의 청령포 유배와 단종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참한 상황의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영주시 순흥면에는 당시 단종복위운동으로 사사된 금성대군 신단이 있는데요.

그때에 순흥부는 폐읍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영주여행] 단종복위운동으로 순절한 '금성대군 신단'

 

청령포

 

청령포는 3면이 강으로 둘러 싸여 있고, 남쪽은 절벽으로 막혀 있어 천혜의 유배지입니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이곳에서 2개월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큰 홍수가 발생해 읍내 영월부 관내 객사였던 관풍헌으로 옮겼습니다.

 

영월부 관아 객사, 관풍헌

 

200년의 세월 예를 갖추다

 

단종의 시신이 영월 동강에 버려진 것을 영월 호장 엄흥도가 거두어 선산인 현 위치에 암매장했습니다.

1516년(중종 11) 폐허가 된 단종 묘를 찾아 봉분을 갖추고 1581년(선조 14) 성석과 표석, 장명등, 만주석을 세웠고, 1681년(숙종 7)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신위를 종묘에 모심과 동시에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으로 했습니다.

 

[조선왕릉] 조선 6대왕 비운의 단종의 능, 영월 장릉

 

정순왕후의 생애

 

판돈녕부사 송현수의 딸로 15세인 1454년(단종 2)에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1455년 단종이 왕위를 세조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자, 의덕왕대비에 봉해졌습니다.

 

 

1457년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지에서 승하할 때 부인으로 강등되오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외롭게 살다 1521년(중종 16) 82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1698년(중종 24) 단종 복위 시 정순왕후로 추봉 되었습니다.

 

정순왕후 사릉

 

정순왕후가 승하하자 단종의 친누나인 경혜공주가 출가한 정미수의 해주 정씨 선산 묘역에 일반묘로 조성했고, 단종 복위와 함께 묘 역시 사릉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조선왕릉으로 승격되면서 주변의 일반 묘는 옮기는 것이 원칙이나 태조 비 신덕왕후 정릉의 예를 들어 분묘의 일부 석물만 매몰하고 묘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조선왕릉] 조선 6대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릉, 사릉과 사릉역사문화관

 

단종복위와 장릉

 

1698년(중종 24) 12월 단종복위와 함께 3개월에 걸쳐 문인석 등 각종 석물과 정자각 등이 세워졌습니다.

이때 조성된 석물체계는 후릉(정조)을 따르고, 수는 경릉(덕종 추준왕)을 따라 검소하고 간략하게 했습니다.

 

조선왕릉 42기 중 2기가 북한에 있는데, 조선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한씨의 능인 제릉과 조선 2대 임금인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의 능인 후릉이 북한에 있는 조선왕릉입니다.

 

[조선왕릉] 고양 서오릉 - 경릉(덕종과 소혜왕후), 홍릉(정성왕후), 창릉(8대왕 예종), 대빈묘

 

 

이후 1726년(영조 2) 엄흥도의 비각, 1733년(영조 9) 능침 표시를 위한 비석을 설치했고, 1791년(정조 15) 268명 제향 인물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과 배식단을 비롯하여 영천에 비를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선왕릉] 조선 6대왕 비운의 단종의 능, 영월 장릉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의 단종 영정,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

 

단종의 짧은 역사와 긴 이야기를 품고 있는 충절의 땅, 영월

단종의 죽음을 함께 한 관풍헌과 자규루

 

영월부 관아 객사, 관풍헌

 

단종역사관 지하 1층특별전시실인데요.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 수개의궤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태실은 태어나면서 자른 태를 묻은 곳입니다. 

 

신연

 

어진의 이안이나 봉안에 사용했던 가마로 보통 10명 이상의 가마꾼이 맨다고 합니다.

이곳에 전시된 신연은 2021년 54회 단종문화제 기간 중 단종어진 봉안 때 사용한 것입니다.

 

영월 관광 안내지도 및 영월 10경

 

단종 유배길 이야기

 

1457년 음력 6월 22일, 돈화문을 출발한 단종의 유배행렬은 인솔 책임자인 첨지중추원사 어득해가 앞장서고 군자감정 김자행과 판내시부사 홍득경, 50명의 군졸로 이우어졌습니다.

 

단종 유배길은 남한강 뱃길과 이포나루에서 청령포까지의 역로를 이용했는데요.

더운 날씨에 일주일 뒤인 6월 28일 영월 청령포에 도착했습니다.

 

단종 유배길 재현

 

단종문화재, 단종 국장 재현, 단종 제향

 

어린 왕세자와 공주가 입던 옷

 

 

왕세자의 하루일과, 왕세자의 입학식 등

 

이어서 조선 6대 임금(왕)인 비운의 단종의 능, 영월 장릉을 구경하러 이동했습니다.

 

[조선왕릉] 조선 6대왕 비운의 단종의 능, 영월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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