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명과 영향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직지심체요절(원명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경)입니다.
1377년 청주목의 흥덕사에서 고려의 고승 백운화상 경한이 저술한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책의 하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도서의 해 기념전시회에 출품되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았습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그 가치를 공인받았습니다.
이에 반해 1455년경 구텐베르크는 독일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 성서를 금속활자로 완성하면서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로 인정받고 세계 인쇄술의 커다란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에 비해 70년 이상 늦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쉬울 수밖에 없는데요.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명과 발전, 그리고 영향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1468)는 신성 로마 제국 출신의 세공업자이자 인쇄업자로 그가 고안한 인쇄기로 인해 유럽은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지식과 정보의 보급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517년 성경책 보급 등으로 종교개혁을 가지고 오게 된 기술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은 인류 4대 발명으로 우리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이며, 최초로 대량 인쇄술로 공인되었습니다.
인쇄술의 발명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구텐베르크의 생애를 들여다봐야겠죠.
구텐베르크의 아버지는 화폐주조와 야금업에 종사했는데, 구텐베르크는 에어푸르트 대학에서 공부한 후 부친이 사망하자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게 되었고, 이후 인쇄업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448년 고향 마인츠로 돌아와서 본인이 개발한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업을 철저한 비밀리에 시작하는데, 3년 만인 1450년에 1282페이지에 이르는 42행 성경인 구텐베르크 성서라고 하는 최초의 라틴어(불가타) 성서를 완성했습니다.
이때 나오던 필사본의 인쇄속도에 비해 15배나 빨랐을 정도로 당시엔 혁명적으로 빨랐던 셈이었습니다.
그후 1457년과 1460년에 라틴어 사전 카톨리콘을 출판했으며, 대주교 아돌프 2세가 인쇄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락하며 1465년에 구텐베르크에게 인쇄술을 발전시킨 공로로 연금을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인쇄업의 발달은 교회에서 발행하는 면벌부 등 주기적으로 발행하는 책자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를 미리 파악한 구텐베르크는 교회와 거래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유럽 전역의 교회를 공략하며 교회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일까를 고민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보다 78년이 앞섰다고 하지만, 애써 만든 금속활자의 명맥이 끊기고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처럼 역사를 바꾸지 못했을까?
우선 유럽은 성경의 보급으로 대중들에게 수요가 있었던 반면, 당시 사용하던 한자는 왕실과 사대부용이라 보급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한자는 수천, 수만 자에 이르러 이를 모두 활자화하기에는 불가능했던 반면, 유럽에서 사용되던 알파벳 문자는 기본적으로 20~30개 내외로 제한적이라 활자를 양산하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대소문자 구분과 장식용 글자체를 따로 두어도 만들어야 할 활자수는 제한적이라 인쇄술의 확산이 가팔라졌기 때문이었죠.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 조상들이 힘들게 개발한 직지심체요절의 명맥이 끊겨 역사를 바꿀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구텐베르크는 마인츠의 조폐국에서 일했던 경력으로 활자기술을 창안했으며, 이때 대량 인쇄에 용이하게 하기 위해 포도주 기름을 짜던 압축기(프레스)를 활용했는데, 신문과 언론을 press라고 칭하는 용어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텐베르크는 1468년 70여 살의 나이로 사망했고, 요한 푸스트가 인쇄소를 넘겨받아 그의 사위였던 셰퍼와 함께 인쇄소를 운영하며 유럽 각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인쇄업이 각광을 받자 셰퍼 외에도 구텐베르크 밑에서 일했던 인쇄공들이 유럽 각지에 인쇄소를 차리면서 인쇄술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당시 초고가의 사치품이었던 책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으로 인해 대중화를 이루었고, 활자화된 지식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며 세계사에서 최초의 본격 대량 인쇄술로 공인되었습니다.
당시 성경 1질 가격이 시골 농노의 집보다 비쌌다고 하니 당시만 해도 인쇄술의 개발은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중세를 거쳐 근세로 접어들어 상공업이 발달하며 인쇄술을 전파되는 데 크게 이바지했으며, 유럽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한 성경이 가톨릭교회와 사제들 독점에서 국가별로 번역되며 보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발달했습니다.
아마도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계기가 인쇄술의 발전이었을 것입니다.
인문주의자와 대학이 초기에 인쇄기를 멸시했지만, 인쇄기는 책의 가격을 크게 줄였기 때문에 인쇄기의 가능성을 온 유럽이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쿠텐부르크의 인쇄술은 유럽에서 본격적인 인쇄술로 정착해 갔는데요.
1470년대에는 유럽 대도시에 12곳의 인쇄소가, 1500년엔 독일에만 300여 곳으로 늘어나며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지식전파가 급속도로 빨라지며 학문 분야에서는 촉매작용이, 비학문분야에서도 인쇄술은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다만, 책의 생산 속도는 빨라졌어도 종이 생산이 획기적으로 느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책은 비싼 상태였으며, 구텐베르크 이후에도 책의 가격은 종이의 생산량과 가격에 많이 구애받고 있긴 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개발로 우리 인류에 미친 영향은 가히 폭발적이며,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개발로 인류에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쇄술로 인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개신교의 출현과 종교개혁, 가톨릭의 영향력 확산일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1519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교황파인 요한 에크와 공개 토론을 벌이는 등 본격적으로 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루터의 연설문, 논문, 논박문은 독일어로 번역되어 광범위하게 퍼지고 전 유럽으로 불길이 번지면서 이를 통해 개신교 탄생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또 신구교 간 종교 전쟁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으로 지각 변동이 일었으며 짧은 시일 안에 막대한 양의 문서와 책을 찍어낼 수 있는 인쇄술이 없었다면 마르틴 루터는 단 2주 만에 전 독일인을 사로잡은 종교개혁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톨릭 역시 성경과 미사 경본이 지방 교회로 대령 배포되면서 가톨릭이 하나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둘째, 인쇄술은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적 부흥과 과학혁명을 촉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전 문헌과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빠르게 전파되어 학문적 연구와 창의성을 자극했으며, 연구결과를 신속하게 공유하며 연구함으로써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셋째, 인쇄술 보급으로 교육과 문해력의 향상을 가져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면서 사회전반에 걸쳐 지식수준이 높아졌고, 전체적인 사회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넷째, 인쇄술은 세계 각국의 언어와 문학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많은 책이 출판되어 문학작품과 민족 언어가 널리 읽히며 사용되어 표준어 형성과 국민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습니다.
다섯째, 인쇄술 발달로 정보의 확산과 지식이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책이 무척 희귀하고 비쌌던 반면, 인쇄술 발전은 책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어 가격이 저렴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섯째, 인쇄술은 출판업과 관련 산업의 성장을 촉진시켰습니다.
출판업, 서점, 도서관 등의 발달로 경제적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맹을 퇴치하고 과학의 발전, 철학과 종교의 발전 등 그 영향이 미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정보의 대량생산과 대중의 의식 수준 향상 등 인류에게 귀중한 재산을 남겨 주었고 인류 역사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오고 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발달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신문발행이 크게 늘면서 대량 인쇄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자 유럽에서는 원압기와 윤전기를 잇따라 개발했고, 20세기에는 컴퓨터에 입력한 글자를 활자 없이 곧바로 인쇄하는 프린터(도트, 잉크젯, 레이저)가 발명되습니다.
인쇄술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현재는 가루를 뿌려 굳혀가며 모양을 쌓아 올리는 방식의 3D프린터까지 발전해 가고 있는데요.
구텐베르크가 가져온 인쇄술이 앞으로 어떤 모습까지 발전해 갈 것인지 자뭇 궁금하고, 그의 발명이 인류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지 새삼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 참고자료
1. 나무위키 구텐베르크 인물정보
2. 조선멤버스(2017.11.9.) 숨어있는 세계사, 구텐베르크 '인쇄술', 500년 전 종교개혁에 큰 역할 했죠
(https://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08/2017110800408.html)
3. 경향신문(2020.5.5.) 고려 금속활자, 구텐베르크 이후 뒤처진 5가지 이유…발명은 ...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0050506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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