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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경복궁 경회루

by 해피이즈나우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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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경복궁 경회루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열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한양천도와 함께 경복궁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3년 차인 1394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9월에 대부분의 경복궁 각을 완성했는데요.
경복궁의 이름은 시경의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로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었지만, 임금이 거주한 기간은 별궁이었던 창덕궁에 비해 훨씬 짧았고 잦은 화재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으로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죠.

 

임진왜란으로 거의 소실된 경복궁은 고종대에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중건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엔 총독부를 세우기 위해 수많은 전각들을 파괴했습니다.
해방 이후 경복궁 복원을 진행했지만, 한국전쟁과 같은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복원은 더디기만 하다가 199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복원을 현재까지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오랜만의 경복궁 나들이 (경복궁 관람정보 및 코스안내)

 

그동안 수많은 노력 끝에 많은 전각들이 다시 들어서며 본래의 경복궁 모습을 찾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경복궁 나들이 갔다가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경회루 모습만 별도로 담았는데요.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연못인 경회지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경회루는 경복궁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복궁의 백미로 꼽히는 경회루 모습은 과거 만원권 지폐 뒷면 도안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경복궁 경회루는 물속에서의 견고함이나 건축의 사상적인 측면에서 경회루는 중요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경회루는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에 있는 조선 후기 연회 장소로 이용된(지금의 청와대 영빈관에 해당) 궁궐 누정이었고, 198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단일 평면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누각입니다.

(원래 외국 사신을 접견하기 위해서 만든 것임)

 

근정전의 크기는 정면 30m에 측면 21 m, 높이 22.5 m(기단 제외, 기단 포함 시 상하월대 2.72m를 포함하여 24.72m)지만, 지금의 경회루는 정면 34.4 m, 측면 28.5 m, 높이 21.5m로 현존하는 한국의 단일 목조 건축 중 부피가 가장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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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창건 당시 처음 지을 때는 규모가 작았으나, 1412년(태종 12)에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팔작지붕의 형태의 전체 기둥이 48개에 이르는 큰 규모로 중건(건축가 박자청)했다고 하는데요.

기둥들은 자연의 이치인 24방과 24절기의 의미가 담겨 있고, 경회지 연못을 만들어 세 개의 돌다리를 설치하여 육지와 연결한 모습입니다.

 

경복궁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아 있다가 270여년이 지난 고종 4년(1867)에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습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경회루의 바깥 돌기둥은 네모나고 안쪽 돌기둥은 둥근데, 이는 땅은 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 사상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경회루는 남북으로 113m, 동서로 128m가 되는 인공으로 만든 커다란 방형 연못 안 동쪽에 치우쳐 있는 네모난 섬 위에 있는 2층 누각 건물입니다.

 

건물 하층의 바닥은 네모난 전돌을, 상층 바닥은 장귀틀과 결합하는 동귀틀이 각 칸에 하나로 구성된 장판자를 깔았고, 동쪽과 서쪽에는 하층에서 상층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계단을 두었습니다.

 

1층 천장, 2층 마루의 귀틀 밑부분은 소란우물천장을 꾸미고 화려하게 단청해 놓았고, 경회루 서쪽으로 있는 네모난 섬 두 개는 당주이며, 이곳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경회루 서쪽에 있는 경회지의 소나무 섬

 

그리고 북쪽에 있는 작은 정자는 하향정인데요.

하향정은 조선시대에 지은 것도, 조선 왕실에서 지은 것도 아닌 이승만 정부 시기 대통령 내외가 경복궁 내에서 휴식하고 낚시를 하고자 지은 어처구니없는 정자라고 합니다.(이 미친~)

 

네모난 인공 연못과 둥근 모양의 섬 2개를 만들었는데, 이 또한 천원지방을 형상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연못 주변에 담장을 둘러서 일반인들이 바라보지 못하게 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훼손했고, 문화재청에서 2000년대에 북쪽과 동쪽 담장을 복원했으나 서쪽과 남쪽 담장은 관람객들의 관람 문제로 복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회지에 비친 북악산 모습

하늘도 파래서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1997년, 경회루 못 바닥에 쌓인 흙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던 중 11월 8일 하향정 동쪽 옆 축대 아래에서 구리합금으로 만든 용이 나와 화제가 되었는데요. 
발견 당시에는 용이 좌우로 나뉘고 머리가 없었지만, 11일 발견 장소로부터 1m쯤 떨어진 곳에서 머리가 나왔습니다.

 

금속 용은 길이가 146.5 cm, 무게는 66.5 kg이며, 학자들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이 경회루를 확장하던 때에 화재를 막으려는 주술적인 용도로 만들어 넣었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회루 앞면

해질녘에 경회루 동쪽 측면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촬영하면 아름다운 사진을 건질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경회루는 일반인들의 관람이 제한되어 있는데요.

특별관람을 통해서만 해설과 함께 경회루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답니다.

 

경복궁 경회루 특별관람경복궁 관리소 예약페이지를 통해서 할 수 있는데, 부지런해야 이 또한 관람할 수 있답니다.

 

금년엔 5.8~6.30, 8.1~10.31까지 10:00, 11:00, 14:0, 16:00 네 차례에 걸쳐서 회차당 35명(1인당 2명)까지만 예약을 통해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경회루 관람료는 무료이나, 경복궁 입장료는 별도로 납부해야 합니다.

경회루 특별관람 소요시간은 40분입니다.

 

일상에서 돈이나 물건 따위를 함부로 마구 써 버린다는 '흥청망청'

 

이 말은 경회루와 관련이 있는데요.
조선 시대 연산군이 '흥청'이라는 기생들을 모아놓고 경회루에서 술잔치를 벌이던 것이 유래가 된 말입니다.

 

경복궁 경회루 뒷모습

 

각 지붕 끝에는 잡상이 11개 올려져 있는데요.

이는 옆에 위치한 법전인 근정전에 올려진 잡상 7개보다 더 많은 것입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사진을 보면 근정전에는 잡상 11개가 올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7개만 있습니다.

 

경복궁에선 경회루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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