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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조선왕실의 거처였던 안동별궁 터 (서울공예박물관)

by 해피이즈나우 2025.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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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별궁(안국동별궁)은 한성부 북부 안국방,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3길 4, 옛 풍문여자고등학교(현 서울공예문화박물관) 자리에 있던 조선 시대의 별궁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가례를 올린 곳이기도 합니다.

안동별궁은 고종 15년(1878) 11월에 건립되었는데, 조선 초기부터 명당자리라 왕실에서 줄곧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세종 때에는 영응대군의 대저택이 있었고, 세종은 1450년(세종 2) 이곳에서 승하했습니다.


1471년(성종 2)부터는 연경궁이라 불리며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살았던 곳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인조 때 정명공주가, 숙종 때에는 연령군이, 철종 때에는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의 신주를 모시는 등 주로 조선 왕족들의 거처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헌종과 철종이 후사가 없고 고종의 적장자가 생기자 1879년(고종 16) 왕실 직속의 별궁을 크게 지어 1881년에 완공했고, 안국동 별궁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에서 안동이란 지명은 경북 안동이 아니라 안국동의 약칭이자 옛 지명이고, 한편으로는 안국방의 소안동에 자리하고 있어 안동별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안동별궁 터 모습

 

안동별궁은 1965년 해체되며 건물들은 팔려 나갔고 그 자리엔 풍문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섰습니다.

풍문여고가 2017년 세곡동으로 이전하자 서울시에서 매입하여 서울공예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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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별궁은 1882년(고종 19) 2월, 왕세자 이척(순종)과 세자인 인씨(순명효황후)의 가례가 이곳에서 치러졌고, 1904년 순묘효황후가 사망하자 1906년에 황태자 이척은 순정효황후와 두 번째 가례를 안동별궁에서 올렸습니다.

안동별궁은 지어진 지 4년 만인 1884년 갑신정변 때,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거사를 계획하고 행사 초기에 인근에 위치한 안국동별궁에 방화한 후,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사대당 관련자들을 제거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방화에 실패하면서 재가 될 뻔하기도 했습니다.

 

1910년 안국동별궁은 이왕직 소유가 되어 잠시 환관과 나인, 상궁들의 거처로 사용되다가 1936년 큰길에 접한 800여평이 기업인이자 친일 반민족행위자였던 최창학에게 팔렸습니다.
1939년 명성황후의 먼 친척이자 휘문의숙 설립자인 민영휘의 아내 안유풍이 부지 4000여 평과 건물을 매입 후 경성휘문소학교를 세웠습니다.

7년 뒤인 1944년 증손자 민덕기가 폐교된 학교에 증조모의 이름 풍과 휘문의 문을 따서 폐교된 정신여학교를 인수하여 풍문여학교를 설립했고, 해방 후 풍문여자중학교와 풍문여자고등학교로 분리했습니다.
2017년 풍문여고(현재는 남녀공학으로 바뀐 풍문고등학교)가 세곡지구로 이전하자 서울시에서 이곳에 서울공예박물관을 조성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안동별궁의 일부 건물은 남아 있어 의친왕이 잠시 머물기도 했으나 학교 부지 확보를 위해 남아있던 정화당과 경연당, 현광루를 매각해 안동별궁은 1965년 완전 해체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정화당은 우이동으로 옮겨가서 요정인 선운각, 김성곤 쌍용그룹 회장의 별장, 쌍용중앙연수원으로 상요 후 1997년 동양화재로 매각돼 현재 메리츠화재 연수원으로 존속 중입니다.

현광루와 경연당은 풍문학원 이사장 민병도의 개인 별장과 골프장인 고양시의 한양컨트리클럽 신코스 18번 홀로 옮겨져 수영장 관련 건물로 사용되다가 문화재청에서 매입 후 복원하여 현재는 충청남도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경내에 있다고 합니다.
(본 내용은 나무위키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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