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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권 여행

소수서원 영정각과 사료관(주자학과 성리학)

by 언제나 휴식같은 친구 2020.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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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영정각과 사료관(주자학과 성리학)

 

 

영주 소수서원에는 국보와 보물이 있고, 당시 주자학(성리학)에 대한 역사와 인물을 정리한 사료관이 있어서 별도로 정리를 해 봤습니다.

 

영주 소수서원,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백운동서원)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 선생이 고려말 유헌인 이 지역 출신 안향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묘를 세우고, 이듬해 백운동서원을 세웠습니다.

 

후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면종 임금께 건의하여 서적, 토지, 노비 등과 함께 최초로 '소수서원'이란 친필현판을 하사 받은 곳이죠.

 

소수서원의 영정각과 사료관 내용을 스케치했습니다.

 

소수서원 영정각 모습

 

영정각은 보물급 영정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 1975년에 지었다고 하는데요.

이곳에서 6개의 영정이 걸려 있습니다.

 

회암 주자(주희)와 회헌 안향, 신재 주세붕, 한음 이덕형, 오리 이원익, 미수 허목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중앙에는 주자의 초상과 국보 111호인 안향의 초상(회헌영정)이 걸려 있는데요.

 

주자(1130~1200)는 송나라의 유학자로 우주의 구성원리를 형이상학의 기로 보았고, 훈고학의 사상적 한계를 벗어나 우주론적인 체계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바로 주자학이고, 후대에 동아시아 지역의 지배적인 이념으로 정착시킨 인물입니다.

 

회헌 안향(1243~1306)은 흥주 출신으로 사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입니다.

여러차례 원나라에 오가며 학풍을 견학하고, 직접 주자서를 베껴오고 주자학의 국내 보급을 위해 섬학전을 설치하는 등 주자학을 널리 퍼뜨린 인물입니다.

 

여기에 걸린 안향의 초상화는 국보 111호로 지정되어 있고, 회헌영정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주자학과 성리학의 관계가 궁금한데요.

 

알아보니 주자학은 성리학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합니다.

성리학은 송나라와 명나라 시대의 유학을 가리키고, 정주학, 주자학, 육왕학, 양명학, 이학, 도학, 심학, 신유학 등으로 불렸다고 하네요.

 

그 이상 자세한 건 어려워서 포기~~ㅎ

 

좌측에는 신재 주세붕과 한음 이덕형의 영정이 있습니다.

 

주세붕(1495~1553)은 백운동서원을 세운 인물로 이 영정은 보물 71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543년 풍기군수로 있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후에 소수서원)을 세워 성리학을 원나라로부터 들여와 유학을 진흥시켰던 고려시대의 안향을 이곳에서 받들게 한 인물입니다.

 

 

한음 이덕형(1561~1613)은 30대 나이에 재상에 올라 영의정을 세 번이나 역임한 명신이었습니다.

오성과 한음이라는 일화에 나오는 그 한음이며, 오성 이항복과 절친한 우정을 유지한 학자입니다.

 

우측에는 미수 허목과 오리 이원익의 초상이 걸려 있습니다.

 

허목(1595~1682)은 남인의 영수로 고학에 심취한 학자입니다.

주자성리학을 중시하던 17세기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달리 원시유학인 육경학에 관심을 두면서 고학의 경지를 개척하였습니다.

 

이원익(1547~1634)은 조선시대 문신이자 서예가로 주자학에서 이항복과 함께 대표적인 명상으로 뽑히는 학자입니다. 

 

이어서 소수서원 사료관을 살펴보겠습니다.

 

소수서원 사료관은 소수서원에 대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관련자료를 정리해 둔 곳입니다.

 

소수서원의 역사와 전통 및 주요 배출 인물들에 대해 설명되어 있고, 관련 유물들도 전시하고 있어 소수서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공간입니다.

 

소수서원,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라는 의미의 사액명칭입니다.

 

지난해에 한국의 9개 서원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장성 필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소수서원의 건축

 

조선시대 서원은 휴식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수서원이 들어선 곳은 성리학의 비조인 안향 선생이 어린 시절 수학한 곳이라고 합니다.

 

대다수 서원의 건물 배치는 앞쪽에 학사를 두고, 뒤에 묘당을 세우는 전학후묘를 따르는데, 소수서원은 동학서묘로 배치를 한 특징이 있습니다.

 

소수서원의 유물

 

안향 초상(국보 111호), 주세붕 초상(보물 717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485호), 이원익 영정, 서총대친림연회도 등의 문화재도 있습니다.

 

한국 도학의 계보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인 안향부터 시작합니다.

이색, 정몽주, 정도전, 김종직, 김굉필, 이황, 이이, 정약용 등 역사에서 유명한 학자들의 이름이 많이 보입니다.

 

소수서원에서 공부한 사람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답게 뛰어난 인재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대부분 퇴계 이황의 제자이거나 학맥과 관계가 깊다고 합니다.

 

월천 조목, 초간 권문해, 약포 정탁, 백암 김륵, 학봉 김성일, 선재 금난수, 격암 남사고 등 당대 명신들이 이곳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라고 하네요.

1888년 마지막 원생을 받을 때까지 무려4,000여 명이 넘는 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신재 주세붕, 백운동서원을 세우다

 

1541년(중종 36) 7월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부임하자마자 피폐해진 순흥향교를 복구하고, 교육기관으로서의 외면당하던 향교 대신 백운동서원을 추진했습니다.

 

서원의 원규를 마련하고, 경제기반을 갖추다

 

주세붕은 임백령, 이언적 등의 도움을 받아 제향과 강학을 위한 재정을 마련하고 서적 등을 구비하였습니다.

또한 서원의 원규를 마련하여 운영방침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1546년(명종 원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안향의 11대손 안현이 백운동서원에 대한 재정적 지원체계를 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은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소수서원이 되다 - 퇴계 이황, 조정에 사액을 요청하다

 

1548년 풍기 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백운동서원을 공인화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1549년 12월 경상도 관찰사 심통원에게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합니다.

 

이에 명종은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라는 의미의 소수로 결정하고 백운동 소수서원이라 명명하게 됐습니다.

 

1457년(세조 3) 순흥에서 일어난 단종 복위운동 실패로 순흥부가 풍기군의 한 면으로 강등되고 순흥향교가 폐지됨으로써 무너지게 된 학문을 학교를 다시 세워 도학을 잇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종의 친필로 소수서원 편액을 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것입니다.

  

도학의실천도장을 꿈꾸다 - 퇴계이후 소수서원의 위상

 

소수서원의 역사 - 한국서원이 시작되다

 

소수서원 연혁

 

조선 서원의 양대 기능은 제향과 강학입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강학기능은 상실하고 제향기능만 남아 있었는데, 소수서원은 조선후기에도 강회나 거접과 같은 교육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침체된 서원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심원록

 

조선시대 서원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볼 수 있었던 사료관이었네요.

소수서원에 가면 영정각과 사료관은 좀 더 자세히 관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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