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행복의 유효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서울시 여행

성균관 명륜당 봄 풍경, 600년 역사가 숨쉬는 곳

by 해피이즈나우 2020. 4. 29.
반응형

성균관 명륜당 봄 풍경, 600년 역사가 숨쉬는 곳

 

 

조선시대 인재양성을 위해 명륜동(현재는 성균관대학 내)에 세워진 국립대학격의 교육기관이 바로 성균관인데요.

 

내 손안에 서울에 600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성균관 명륜당의 봄 풍경(시민기자 이선미 씨의 글)을 소개한 글이 있어 코로나로 답답한 마음을 예쁜 사진으로 나마 구경하였으면 하는 바람에 공유합니다.

 

성균관은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등이 공부한 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에서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 같습니다.

몇 해 전에는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드라마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서울도보 관광코스에도 ‘성균관 유생들의 이야기’ 길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성균관은 예전 가을에 들렀는데 가을도 예쁘고 봄 풍경도 너무나 예쁘네요.

 

성균관과 서울문묘 석전대제(in 성균관대)

 

성균관 유생들의 이야기는 영조가 세운 탕평비 보호를 위해 세운 탕평비각에서 시작됩니다.

 

 

탕평비각은 영조의 탕평책의 뜻을 성균관 유생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탕평비를 보호하는 비각으로 1742년(영조 18)입니다.

탕평책은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당파간의 정치세력에 균형을 꾀한 정책이죠.

 

영조가 친필로 비문을 썼다하여 어서비각이라고도 불립니다.

 

성균관대 입구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인데요.

성균관대 표지석성균관이 문을 연 '1398' 연도가 적혀 있습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에는 중요한 두 공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교의 공자와 그 제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고, 또 한 곳이 바로 조선시대 대학 역할을 한 ‘명륜당’이죠. 

 

대성전 앞에는 각각 가지가 세 개, 다섯 개로 갈라진 두 그루 측백나무가 있는데, 유교의 중요한 가르침인 삼강과 오륜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유교의 공자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휘호는 조선의 명필 석봉 한호의 친필입니다.

 

유교가 국가의 근간이었던 조선시대에 공자와 성현을 기리는 제사는 중요한 행사였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석전대제’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도 훼손되지 않고, 오늘에 이어진 우리의 전통문화로 1986년에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공자의 나라이자 유학의 본산인 중국에서조차 문화혁명 등을 겪으며 원형을 잃어버려 우리나라 석전대제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졌다고 하네요.

 

2019년도 봄에 열린 춘계 석전대제 장면인데요.

보통 음력 2월에 개최하고 있습니다.

 

석전대제는 매년 봄과 가을에 거행되고 있습니다.

 

문묘, 곧 성균관의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선성과 선현들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 모든 유교적 제사 의식의 전범이며, 가장 규모가 큰제사라고 합니다.

 

석전대제는 동북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만 온전히 보존된 문화입니다.

 

대성전이 제향의 공간이라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명륜당’은 강학 공간입니다. 

말하자면 국립대학이었던 성균관의 문턱은 그만큼 높았던 것입니다. 

 

 

적어도 소과(생원시, 진사시)에 합격한 유생만이 특별한 혜택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고, 말 그대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여 학문을 닦는 곳이었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에게는 따로 ‘졸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는데요. 

문과의 대과인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바로 성균관 졸업을 의미했다고. 

 

그러다 보니 20년 동안이나 성균관 유생으로 지낸 이도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 천 원권 지폐에도 등장합니다.

 

수형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명자나무가 붉게 꽃 핀 마당을 지나 명륜당 앞에 서니 강당에 크고 작은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유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임금들이 써 보낸 현판은 요즘으로 치면, 교실 앞에 붙어 있는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라고 새겨진 정신이 번쩍 드는 교훈 액자 같다고나 할까? ㅎㅎ 

지엄한 임금의 글씨가 내려다보고 있는 공간에서는 감히 졸거나 딴생각을 할 수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조선 500년을 책임진 학자와 정치가들이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명륜’을 배우고 익혔다고 합니다.

 

명륜당 안쪽에 붙은 현판 가운데 가장 중앙에 자리한 것은 정조 임금이 내린 ‘어제태학은배시’라고 합니다.

 

명륜당 벽과 천장을 가득 채운 40여 개의 현판은 유생들을 격려하고 채찍질하는 죽비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쳤다는 얘기가 전해져 성균관과 향교 등 학교에는 항상 은행나무를 심었습니다

명륜당 마당에도 오백 년을 살아온 커다란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위용을 드러내고 서 있는데요.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잎이 장관을 이뤄 많은 시민들의 출사지로도 이름이 높은 곳이죠.

 

명륜당 앞뜰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9호)는 1519년 심어 500살이 되었습니다. 

 

여러 지지대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더욱이 동쪽 나무는 한국전쟁 때 포탄을 맞아 큰 상처를 입었다가 회복되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명륜당 마당의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찬란하게도 물든 모습이 장관을 이룹니다.

 

마당에는 양쪽으로 동재와 서재라 불리는 유생들의 기숙사가 자리하고요. 

동재에는 생원이, 서재에는 진사가 지냈다고 합니다. 

 

 

대략 200명이 수학하는 명륜당의 아침은 북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유생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책을 읽다가 아침을 먹었고, 성균관의 독특한 시스템 중 하나가 식당의 출석부로 과거시험 응시자격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도기라고 불린 출석부에 서명을 했는데, 1년에 300번 이상이어야 시험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명륜당 마당 양옆에 배치되어  있는 모습 

 

유생들은 아침을 울리는 북소리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성균관 명륜당은 문묘(대성전)의 정전과 강학장소, 유생들의 기숙사가 한 공간에 자리해 나라에서 유교 교육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요. 

 

성균관에는 대성전과 명륜당 말고도 오늘날의 도서관인 존경각과 활과 화살 등을 보관하던 육일각, 그리고 제례를 주관하는 관리들이 사용하던 향관청 등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유생들이 공부하거나 과거 시험을 보던 비천당 이외에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곧바로 조선시대 학교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답니다.

 

 

오늘날의 도서관인 존경각

 

활과 화살 등을 보관하던 육일각 

 

성균관은 과거의 유산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절학교를 열고, 인성교육과 예절교육 등을 위한 강사 양성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관심 있는 시민들은 성균관(http://www.skk.or.kr/)에 자세한 내용을 문의하면 됩니다.

 

두 그루 은행나무 사이로 명륜당이 보이는 모습

여름엔 두 거대한 은행나무 아래에서 시원하게 명륜당을 바라보며 옛날에 선비들이 공부했을 그 모습을 그려보며 생각에 잠기면 좋겠네요.

 

구름 떠가는 하늘 아래 봄날은 가고 어느덧 명자나무 꽃은 바닥에 붉게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대학 신입생들의 발길이 이어졌을 명륜당이 호젓합니다. 

빨리 상황이 마무리되어 학생들의 분주하고 풋풋한 봄날이 시작되면 좋겠네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