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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권 여행

안동여행, 도산서원 관람안내 및 옥진각에서 알아보는 퇴계 이황

by 해피이즈나우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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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 도산서원 관람안내 및 옥진각에서 알아보는 퇴계 이황

 

 

안동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퇴계 이황의 숨결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도산서원입니다.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을 건립한 장소에 지어진 도산서원퇴계 이황 선생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학문연구와 인격을 도야한 퇴계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제자들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퇴계 이황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선비로 70여 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 인격도야, 후진양성에 힘써 이 나라 교육 및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어 만대의 정신적 시표가 된 분입니다.

 

안동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도산서당 입장료와 주차장 등 관람정보도산서원 전시관옥진각을 통해서 퇴계 이황의 사상과 삶을 살펴봤습니다.

 

퇴계 이황이 사후 4년 만인 선조 7년(1574)에 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세우기 시작하여 1575년 낙성이 되자 선조로부터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576년에는 퇴계의 위패를 봉안하였습니다.

 

1792년에는 정조가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향사에 필요한 물품을 친히 내리고 특별 과거인 별시를 도산서원에서 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에도 영남유학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중용성을 인정받아 철거되지 않았습니다.

 

 

도산서원에는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기숙사인 농운정사, 퇴계 사후에 지어진 전교당, 상덕사, 전사청 등이 있고, 제자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박약재와 홍의재, 서원에서 만든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 서원 관리인의 숙소 등 부속건물들이 있습니다.

 

도산서원은 2019년에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도산서원 관람안내

 

관람시간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휴무일(휴관일) 없음

입장료(관람료) 성인 1,5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600원

무료관람 경로, 6시 이하 어린이, 국가유공자, 장애인

주차장 주차요금 승용차(소형) 2,000원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입구에서 300여 미터 걸어가면 도산서원 앞마당이 나옵니다.

 

도산서원은 전면에 낙동강이 흐르는 경사지에 입지하고 있습니다.

퇴계 이황은 낙동강 가에 앉아 낚시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며 도산서원 주위의 자연환경을 노래한 도산잡영에 낙동강을 배경으로 하는 시가 여러 개 확인된다고 합니다.

 

 

도산서원 양편 산기슭에는 절벽이 있는데, 퇴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음을 수영하기 위해 산책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서쪽 절벽을 천관운영대, 동쪽 절벽을 천연대라고 불렀습니다.

 

두 이름에는 주변의 절경과 퇴계가 말년에 이곳에서 자연의 이치를 벗 삼아 학문을 성취하려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산서원 앞 낙동강 건너에는 시사단이라고 하는 이색적인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멋진 공간이 뭘까 궁금했는데요.

 

시사단은 조선시대 특별 과거시험을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과 비각이 있는 곳입니다.

시사는 선비에게 시험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총 응시자 7228명, 임금이 직접 11명을 선발하였습니다.

 

1792년 정조는 존경하던 퇴계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열고 영남지역의 인재를 선발하도록 했습니다.

1796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단을 마련하고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당시 영의정이었던 채제공이 지었습니다.

 

안동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는 도산서원과 마주 보이는 강변의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비각이 세워져 있었는데, 1975년 안동댐 건설 이후 원래 있던 자리에 10m 높이의 돌로 축대를 쌓아 올린 뒤 옛 건물과 비석을 원형대로 옮겨지었습니다.

 

서쪽 절벽인 천관운영대가 있는 곳의 낙동강 모습

 

시사단 앞 낙동강에서는 수상스포츠도 즐길 수 있나 봅니다.

 

도산서원 모습

 

안동 가볼만한 곳, 도산서원

 

도산서원 앞에 있는 나무가 더욱 운치있는 장면을 만들어 주는 듯합니다.

 

도산서원 앞마당에는 오래된 왕버들이 두 그루 있습니다.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냇가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입니다.

 

 

왕버들은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을 지을 시절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안동댐 조성 시 수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산서원 전면부 마당을 5m 가까이 성토하는 과정에서 지하고 대부분이 땅 속에 묻혔다고 합니다.

 

왕버들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

 

또 다른 왕버들 나무

 

도산서원 정문에서 바라본 앞마당 모습

 

도산서원을 관람하고 내려오는 곳에 도산서원 전시관인 옥진각이 있습니다.

 

도산서원도

1751년 강세황의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그림입니다.

 

옥진각 도산서원 전시실 안내도

퇴계 이황 선생의 생애와 과거급제, 대보잠, 공직생활, 문학의 세계, 퇴계의 사상 등에 대한 전시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퇴계 선생의 표준영정은 1973년 한국은행에서 1000원권을 발행할 때 현초 이유대 하백이 초상화를 제작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생애

 

호는 퇴계, 퇴도, 자는 경호, 시호는 문순공, 1501년에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나 1570년 한서암에서 별세했습니다.

 

1502년 일곱달 만에 아버지 별세

1521년 김해 허씨와 혼인

1523년 태학(성균관)에서 수학

1527년 경상도 향시 진사초시, 생원초시 합격, 부인 별세

1530년 안동 권씨와 재혼

 

1532년 문과초시 2등 합격

1534년 문과 급제

1536년 선무랑과 성균관 전작, 호조좌랑 임명

1537년 어머니 별세로 관직에서 물러남

1542년 어사로 충청도, 강원도 감찰

1543년 신병으로 관직 사임

1547년 안동부사 재수되었으나 사임

1548년 단양군수, 풍기군수, 단양팔경 선정

1549년 백운동서원을 소수서원으로 사액받음

1553년 성균관 대사성

1558년 23세의 율곡 이이가 계상서당 방문

1561년 도산서당 완공

1568년 의정부 우찬성과 판중추부사 대제학 겸임

1570년 한서암에서 별세

1576년 문순공 시호 내려짐

 

퇴계 선생의 과거급제

23세에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24세부터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세 번 낙방, 27세에 생원 2등으로 합격, 이듬해 진사시험 합격

32세에 과거시험에 문과 초시 2등 합격, 34세에 문과 급제

 

퇴계 선생의 공직생활

 

퇴계 이황은 여러 관직에 제수되긴 했으나 어머니가 '너의 벼슬은 한 고을 현감직이 마땅하니 높은 관리가 되지 마라, 세상이 너를 용납하지 않을까 두렵다'라는 말을 따르고자 하여 70여 회에 걸쳐 벼슬을 사양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퇴계 이황의 사상, 주리론

 

16세기에 성리학은 관념적 이기론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서경덕을 선구조로 하면서 경험적 세계를 중요시하는 주기론이언적을 선구자로 하면서 원리적 문제를 중요시하는 주리론 등 두 계통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이 두 학자를 이어 조선 성리학을 대성한 사람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입니다.

 

 

퇴계 이황의 사상인 주리론은 주자서절요, 성학십도 등을 지어 주자의 이기이원론을 더욱 발전시켜 확립하였습니다.

경험적 세계의 현실 문제보다는 도덕적 원리에 대한 인식과 그 실천을 중요시하여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도덕규범의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퇴계 선생의 학통은 김성일, 유성룡 등의 제자에 의해 영남학파를 형성하였고, 율곡 이이의 주기론의 입장에서 관념적 도덕 세계를 중요시하는 동시에 경험적 현실세계를 존중하는 새로운 철학체계를 수립하였습니다.

그의 학통은 조헌, 김장생 등으로 이어져 기호학파를 형성하였습니다.

 

퇴계학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발행되었고, 일본의 유학자들로부터 숭상을 받았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 미국, 독일 등에서도 퇴계학연구회가 조직되어 있다고 합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리학자로 사제지간과 다름없는 존중과 애정의 정을 나눈 사이였다고 합니다.

율곡이 퇴계를 대할 때 언제나 최대의 예의와 존경으로 대했습니다.

 

퇴계 이황이 남긴 교육에 대한 말씀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니다.

배우는 사람의 공부 가운데 심신을 닦는 것보다 절실한 일은 없다.

진리가 가까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참된 일은 아니다.

 

퇴계 선생의 문집

그 유명한 시조인 '도산십이곡'도 보이네요.

 

도산서원 배치도

도산서원의 이야기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안동 가볼만한 곳, 도산서원

 

도산서원 모습

 

퇴계선생과 혼천의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기기로 혼의, 혼상, 선기옥형이라고도 합니다.

도산서원에는 퇴계 선생이 교육용으로 제작한 혼천의와 선기옥형의 일부가 남아 있고,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의 천문기기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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