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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서대문 독립공원(독립문 및 독립관) 나들이

by 해피이즈나우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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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독립공원(독립문 및 독립관) 나들이

 

 

오랜만에 서대문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서대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고, 형무소 앞에 조성된 독립문 등이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안산자락길을 걷거나 안산 정상인 봉수대까지 올라가기에 좋은 곳이죠.

 

그리고 최근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까지 생겨 서대문에 볼거리가 더욱 많아진 기분입니다.

 

휴일에 이곳들을 구경하기 위해 나섰는데요.

먼저 독립문과 독립관 등 현충시설이 가득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독립문공원) 풍경을 담았습니다.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문이 있다해서 간단히 독립문공원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1987년  이곳에 있던 서대문형무소(서울구치소)가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1992년에 개장했다가 2007년 재조성 사업을 추진하여 2009년에 완성한 공원입니다.

서대문형무소가 있던 곳이라 독립운동을 테마로 하며 만들어진 공원으로 곳곳에 현충시설이 있어서 다른 공원과는 다르게 엄숙해지는 공원이기도 합니다.

 

서대문 독립공원(독립문공원) 안내도

 

남쪽에 독립문이 자리하고 있고, 이어서 서재필 동상, 독립관, 3.1운동 기념탑, 순국선열추념탑, 유관순 동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주차장 및 입장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시관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일본제국주의 근대식 감옥, 서대문형무소

대한민국의 시작,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독립문

 

독립문은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운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자발적인 참여로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가 모금을 주도하고 고종의 승인을 얻어 1897년 11월 20일에 완공했습니다.

 

독립문은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하고 조선인 심의석이 공사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화강암을 쌓아 만든 독립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습니다.

 

 

옥상에는 돌 난간을 둘렸고 홍예문 가운데 이맛돌에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를 새겼습니다.

 

현판석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獨立門)을 새기고 그 좌우에는 태극기를 새겼습니다.

 

독립문은 원래 현재 위치에서 남동쪽 70m 떨어진 길 가운데에 있었는데 1979년 성산대로를 공사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독립문은 3천만 겨레의 독립 정신을 영원히 상징하는 것"

(자유신문, 1947년 11월 17일)

 

독립문 앞에 세워져 있는 기둥은 영은문 주초입니다.

 

영은문주초는 모화관 앞에 있던 영은문의 기둥을 받쳤던 돌인데요.

1895년 사대 외교의 상징인 영은문을 철거하면서 이 돌만 남게 된 것입니다.

 

독립문과 마찬가지로  1979년 성산대로를 공사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모화관은 조선시대에 중국 사진을 맞이하던 곳으로 태종 7년(1407)에 모호루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는데요.

세종 12년(1430)에 모화관으로 바꾸고 홍살문을 세웠고, 중종 32년(1537)에는 홍살문보다 격식을 갖춘 영조문을 만들고 그로부터 3년 후 이름을 영은문이라 고쳤다고 합니다.

 

독립문 앞에서 찍은 서대문 독립공원 모습

 

이어서 만나는 동상은 서재필 동상입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서재필 선생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윤치호 선생과 이상재 선생의 협력으로 독립협회를 창립하였습니다.

 

독립협회는 중국을 사대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세웠고,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고쳤으며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습니다.

 

 

서재필 선생은 1919년 3.1 운동 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내놓는 등 조국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으나 1951년 1월 5일 미국에서 서거하셨습니다.

 

독립관

 

조선시대 중국 사신들을 영접하고 전송하던 영빈관의 하나인 모화관을 1894년(갑오경장) 이후 서재필이 발의하여 독립협회 주도로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바꾼 곳입니다.

 

독립문과 함께 독립사상을 표현했으나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습니다.

원래 위치는 동남쪽 350m 지점이었으며, 고증에 따라 1996년에 재건축한 것입니다.

 

목조건물로 건축된 독립관은 현재 순국선열들의 위패봉안 및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립관 마당에서는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독립전쟁에 대한 전시로 '대일독립전쟁 50년의 역사를 재조명하다'란 주제의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독립관에서 바라본 독립문

 

3.1 독립선언 기념탑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은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삼창하며 거국적인 3.1 독립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민성금으로 탑골공원에 건립했다가 1992년에 이곳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이전했습니다.

 

3.1 독립선언 기념탑 뒤에는 3.1 독립선언문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유관순 동상

 

1902년에 천안에서 태어나 1919년 3.1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검거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옥중 만세운동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서대문 독립공원 잔디마당에는 평화의 새, 비둘기들의 아지트가 되었네요.

이들 비둘기처럼 우리나라에도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래 봅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안산자락길과 안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까지 가볍게 산행을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서울 안산자락길 및 안산 등산코스, 안산정상 봉수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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