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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어진박물관

by 해피이즈나우 202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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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어진박물관

 

 

전주한옥마을 경기전에 가면 태조 어진을 봉안한 우리나라 유일어진박물관이 있습니다.

 

[전주한옥마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경기전

 

어진박물관은 태조어진을 비롯하여 어진 봉안 관련 유물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곳입니다.

경기전 정전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어서 경기전을 구경하면서 함께 관람하시면 됩니다.

 

어진박물관의 전시내용을 스케치했습니다.

 

어진이란 왕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어진 외에도 진용, 진, 진영, 수용, 성용, 영자, 영정, 어용, 왕상, 어영 등 다양하게 불렀다고 합니다.

 

 

어진 제작은 생존해 있을 때 그린 도사, 승하한 후에 그리는 추사, 그려진 어진이 훼손되었을 때 모사하여 신본을 그리는 모사 등 세 가지가 있습니다.

 

현재 경기전의 어진은 너무 오래되어 원본은 물에 씻에 백자항아리에 담아 묻었고, 모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모사이지만, 경기전에는 국내 유일의 태조 어진이 있는 곳이죠.

 

경기전 입장마감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방문해서 어진박물관 주위로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은 경기전 입장객들 모두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주 경기전에 있는 어진박물관 태조어진 전주봉안 600주년을 맞이해 2010년 11월 6일에 개관했습니다.

이곳에는 국보 317호인 태조어진을 비롯해 태조어진을 봉안할 때 사용된 가마유물 및 경기전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실은 어진실 1, 2와 역사실, 가마실,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태조어진은 1410년(태종 10)에 전주 경기전에 봉안되었습니다.

현존하는 태조어진은 1872년(고종 9) 조중묵을 비롯한 10인의 화사가 새로 모사한 영정입니다.

 

건국자의 권위와 위엄이 돋보이는 어진으로 용안의 정면을 그린 전신상이죠.

 

 

머리에 익선관을 쓰고 청룡포를 입었으며, 허리에 각대를 차고 흑화를 신은 평상시 집무복을 입은 모습입니다.

눈과 입은 작고 귀는 크며, 오른쪽 눈썹 위에 사마귀가 있는 모습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태조는 키가 크고, 몸이 반듯하며, 풍채가 좋다고 합니다.

 

태조어진(국보 317호)은 건국자의 초상이란 점에서 조선왕조를 상징합니다.

명종실록에는 태조어진이 26축 있었다고 적혀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경기전의 태조어진이 유일합니다.

 

한편 영흥 준원전의 태조어진사진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경기전 태조어진이 흰 수염의 노년모습이지만, 준원전(댓글에는 선원전이 맞는표현이라고 함)의 태조어진은 장년의 모습으로 검은 수염에 광대뼈가 도드라진 모습입니다.

 

우측의 홍룡포를 입은 태조어진은 청룡포를 입은 진본인 태조어진을 홍룡포로 바꾸어 그린 어진입니다.

 

역사실 모습입니다.

경기전 건립, 태조어진 봉안, 태조어진의 수난과 보존, 태조어진의 관리, 경기전 제례, 전주의 조선왕조 관련 유적지, 조선왕조실록 등 경기전과 태조어진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태조어진은 1872년(고종 9)에 새로 모사한 것으로, 조선 초의 태조어진은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그림을 물에 씻어내고 백자항아리에 담아서 경기전 북계상에 묻었다고 합니다.

 

풍남문과 풍패지관(전주객사)

 

조선시대에 전주를 풍패지향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풍패란 건국자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의 고향이 풍패인데서 유래한다고 하네요.

 

 

풍남문(보물 308호)은 전주부성의 남문으로 1767년(영조 4) 화재로 소실되어 새로 축조하였는데요.

이때 풍패의 풍자를 따서 남문을 풍남문이라 하였습니다.

서문은 풍패의 패자를 따서 패서문이라고 하였고요.

 

전주객사(보물 583호)는 풍패관이라 하였고, 객사 중앙에 풍패지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목대와 이목대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을 거두고 귀경길에 전주에 들러 일가친지를 불러모아 잔치를 벌이고 대풍가를 읊었다는 곳입니다.

이를 기념해 고종 친필의 비를 1900년에 세웠습니다.

 

이목대는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기 전에 살았던 곳으로 이를 기념해 고종 친필의 비를 1900년에 세운 것입니다.

 

경기전 중앙대제 상차림과 제례 모습

 

태조어진의 전주 봉안

 

가마실 모습입니다.

 

좌측에 있는 것은 채여로 왕실의식 때 귀중품을 옮겨 싣는데 쓰던 것이고, 중앙에 있는 것은 태조어진 신연, 우측에 있는 것은 위패봉안 신연입니다.

 

위패봉안 신연 모습

어진의 이안이나 봉안에 사용하였던 가마를 말합니다.

 

향정

향정은 향정은 향로와 향합을 싣고 가는 조그마한 가마로 향정자라고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1872년 태조어진을 이안할 때 사용했던 것입니다.

 

어진실 2에는 조선시대 임금의 초상화 6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의 어진인데요.

 

코로나 때문인지 이곳은 출입을 막아서 입구에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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