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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여행

백제 웅진시대의 역사를 배우는 웅진백제역사관(in 공주 송산리고분군, 무열왕릉)

by 해피이즈나우 202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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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웅진시대의 역사를 배우는 웅진백제역사관(in 공주 송산리고분군, 무열왕릉)

 

 

공주여행을 가면 꼭 둘러봐야 할 곳은 공주 무열왕릉과 왕릉원(송산리고분군)입니다.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인 웅진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에는 알려지지 않은 6개의 무덤과 유일하게 알려진 무령왕릉이 있고, 입구에 웅진백제역사관과 고분군 안에 송산리고분군 전시관이 있어 함께 관람하면 됩니다.

 

공주 가볼만한 곳, 무령왕릉과 왕릉원(송산리고분군)

송산리고분군 전시관(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웅진백제역사관은 백제의 역사문화 컨텐츠와 IT 시스템을 활용한 교육과 홍보, 체험을 할 수 있는 전시관인데요.

작지만 백제 웅진시대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역사교육장으로 좋은 곳입니다.

 

웅진백제역사관 전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송산리고분군 입구에 위치한 웅진백제역사관

 

 

송산리고분군과 무열왕릉 입장료를 내면 관람할 수 있습니다.

입장시간은 09:00~17:30입니다.

 

웅진백제역사관은 돔 형태의 조형물 지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무열왕릉과 왕릉원을 관람하러 가기 전에 웅진 백제시대의 역사를 알고 가면 도움이 많이 된답니다.

 

웅진백제역사관

 

백제의 웅진천도

 

백제는 북쪽으로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서로 영토를 넓히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백제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숨지면서 수세에 몰렸으나 국력을 키운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이 백제의 58개 성을 함락시키고 아신왕에게 신하의 맹세를 받아냈죠.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 백제는 성을 쌓고 중국 북위에 구원을 요창하는 등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고구려는 475년 9월, 한강을 건너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 한성을 함락시키고 백제 개로왕을 죽였습니다,

 

이에 신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군사 1만명을 데리고 왔으나 이미 상황은 종료된 상태, 개로왕에 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문주왕은 웅진천도를 단행하여 공주의 백제시대거 열리게 되었습니다.

 

공주 백제시대 웅진도읍의 키워드

단연 공산성과 무령왕릉이 공주의 백제역사에서 가장 큰 키워드입니다.

 

백제역사 연대기

 

BC 18~475년 한성 도읍기

475~538년 웅진도읍기(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

538~660년 사비도읍기

 

왕도웅진 백제의 새로운 중심지

 

고구려에 의해 한성의 함락되고 개로왕의 죽음으로 백제는 공주, 당시의 웅진으로 천도했습니다.

 

웅진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적들이 내려오기 어려웠고, 멀리 계룡산의 산줄기도 고구려와 신라를 막아주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전라도의 너른 평야와 금강을 통해 서해로 나가 중국과 일본과의 교역도 원활한 지역이었죠.

 

아울러 당시 웅진에는 이미 백제 왕실과 귀족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로 선택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웅진천도에 대한 영상

 

백제 웅진도읍기의 왕들

 

22대왕 문주왕(475~477)

23대왕 삼근왕(477~479)

24대왕 동성왕(479~501)

25대왕 무령왕(501~523)

26대왕 성왕(523~554)

 

백제 웅진도읍지 모습

 

갱위강국, 왕도 웅진에 되살아난 백제

 

갑작스러운 천도로 백제의 지배세력이 교체되었고, 고구려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와 동맹을 강화했습니다.

고구려 때문에 북쪽 진출이 어려워지자 영산강과 섬진강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웅진시대에서 백제는 안정적으로 변해갔고, 문화도 발전했습니다.

수도를 빼앗기는 아픔이 있으면서도 웅진에서 강국이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백제, 다시 강국이 되다

 

백제 웅진시대의 영웅

 

고달 개로왕과 동성왕 때 중국 사신으로 활동, 국제교류 활발

단양이 오경박사로 일본에 유학과 한문을 가르쳐 일본의 학문발전에 기여

다리와 지리 다리는 무령왕의 장인으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은팔찌의 작품이며, 그의 후손인 지리는 일본 아스카데라 대불과 호류지 석가삼존상을 만듦

겸익 성왕 때의 승려로 인도에 가서 불교를 공부하고 백제불교 발전에 기여 

수수허리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의 양조기술 전파

 

양직공도

 

양직공도는 중국 양무제의 아들 소역(후 원제)이 526~536년 무렵 양에 파견된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하고 사신들을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사신 왼쪽에 제목을 적고 나라 이름과 산천, 풍속을 기록했으며, 양나라와의 관계, 공납물품 등을 적었습니다.

현재 원본은 전하지 않고 후대의 모사본에 13개국에 대한 기록과 그림만 남아 있습니다.

 

백제국사 조에는 백제에 종속된 9개 소국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9개 소국은 신라와 가야제국을 포함한 남방지역 나라들로 백제 사신은 주변국가들을 소국으로 낮추어 보고 백제가 대국임을 과시하였습니다.

 

무령왕대에 이룩한 대내외적인 성과를 기반으로 한 백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기록입니다.

 

동탁 은잔 속 백제의 이상세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은잔의 실물을 볼 수 있었고, 그 음각 문양들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무령왕릉 발굴 50년, 국립공주박물관

 

동탁은잔의 문양

 

청동받침 중앙에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둘레에는 톱니무늬를 새겼으며 그 사이에는 신수들을 새겼습니다.

사람의 얼굴과 새의 몸을 한 인면조가 손에 꽃을 들고 있고, 용과 사슴, 새 4마리가 연꽃 사이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습니다.

 

 

 

은잔 겉에는 연꽃무늬를 돌리고 그 위에 용 3마리를 돌아가며 새겼습니다.

 

뚜껑에는 꽃봉우리 모양의 꼭지를 달고, 아래에는 작은 연꽃무늬 금판을 붙였으며, 그 밑으로 큰 연꽃을 새겼습니다.

뚜껑 아래에는 산봉우리를 4구역으로 배치하고 봉우리 사이에 봉황과 새, 사슴, 나무를 배치하였습니다.

 

백제의 세 번째 도읍지인 사비천도 이후

 

웅진은 천혜의 요새이자 우호적인 지방세력의 거점이었으나 계속 성장하는 백제를 품기에는 좁았습니다.

538년 성왕은 사비로 수도를 옮기고 64년 간의 웅진도읍기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 후 웅진은 백제 5방성 중 하나인 북방성으로 백제 지방지배의 중요거점이 되었습니다.

660년 의자왕이 신라와 당나라 공격을 받고 웅진에 피난했던 것은 웅진이 백제에서 중요한 위치였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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