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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행

유관순의 스승이었던 김란사 특별전(in 서울교육박물관)

by 해피이즈나우 202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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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의 스승이었던 김란사 특별전(in 서울교육박물관)

 

 

북촌한옥마을에 나들이 갔다가 서울교육박물관에 들렀는데요.

 

서울교육박물관은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교육제도, 교육과정, 교육내용, 교육기관, 교육활동 등에 관한 유물과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을 시대별로 전시하여 지난 1995년 6월 15일에 개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서울교육박물관(in 북촌한옥마을)

 

서울교육박물관에는 상설전시관 외에 특별전시관에서 매번 특별전을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김란사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어서 전시 모습을 담았습니다.

 

김란사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최초로 학사학위를 받았고, 평생을 여성교육을 위해 헌신함은 물론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신여성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스승으로 알려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서울교육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김란사 특별전

'네가 선택한 삶이 아름답기를'

 

김란사(1872~1919)의 탄생 150주년을 맞이해 기획된 전시로 3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독립운동가이면서 이화학당 총교사였던 김란사(1872~1919)는 이번 서울교육박물관 특별전을 통해서 처음 들어 봤습니다.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미국에 유학가서 최초로 미국 문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선교사이면서 교육자이고, 여성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위관리직인 남편 하상기와 결혼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이화학당에 찾아갑니다. 

당시 금혼 학칙에 따라 입학을 거부당하자 그는 하인이 들고 있던 등불을 입으로 불어 끄면서, "내 인생은 이렇게 밤중처럼 캄캄합니다. 나에게 빛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들이 배우고 알아야 자식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후 일본 게이오대학을 거쳐 "이 나라 저 나라가 앞다퉈 넘보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교육만 살길"이라며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에 입학해 1906년 문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학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최초의 여성입니다.

귀국 후에도 모교인 이화학당에서 영어와 성경을 가르쳤고, 이화학당 내 대학과가 설립되면서 한국인 최초의 대학교수가 됩니다. 

이화학당에서는 사감 교사 교감으로 재직하며 학생자치단체인 이문회를 이끌었는데 당시 이화학당 제자였던 유관순 열사가 김란사 선생의 권유로 이문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김란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몸소 실천한 운동가였습니다.

지금의 감리교신학대학 설립에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여 학교를 세우고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19년 의친왕의 밀지를 받고 파리 강화 회의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로 가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잠시 머물다가 3월 10일 동포들이 마련한 환영만찬회에서 누군가에게 독살당했다고 합니다.

 

대학시절 모습과 학사모를 쓴 김란사

 

일평생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그 열망을 여성교육과 독립운동으로 이어갔던 김란사 선생.

그녀의 열정은 독립운동가 '유관순'을 만들었고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이 조국 해방의 주역으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고종의 통역사로 임명되오 고종을 도와 독립지원 외교를 펼쳤습니다.

 

 

1911년 김란사에게 밀지를 내린 고종.

 파리 강화 회의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윌슨 대통령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비밀문서가 제대로 전달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김란사 평생도

 

1872년 평양에서 태어나 서울로 터전을 옮겼고, 아버지가 청나라를 오가며 무역을 하는 덕분에 부유한 가정에서 보냄.

1893년 21살에 서울 경무청에서 일하는 하상기와 결혼

1894년 딸 원옥이 태어나고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할 때 배워야 한다는 행각에 이화학당 찾아감.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배경이 궁금해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공부

 

1897년 더 배우기 위해 미국행, 하워드대학에서 신학공부, 웨슬리언대학에서 문학공부

1906년 귀국, 1907년 지금의 감리교신학대학을 설립하고 교사로 일한 뒤 이화학당으로 돌아감.

1910년 이화학당 총교사(교감)와 기숙사 사감 지위부여, 이화학당 최초의 대학교수

1916년 이화학당에서 민족의식을 불어넣으며 유관순 만남

감리교 한국대표로 뽑혀 미국행, 시카고대학에서 신학공부

1918년 파이프오르간과 함께 귀국

(1916년 정동제일교회에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을 설치)

 

1919년 1차 세계대전 후 파리강화회의가 시작되자 고종으로부터 중요임부 부여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외교 비밀문서를 가지고 가려고 했으나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중단

1919 3.1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며칠 뒤 파리로 가기 전 중국 베이징에서 비밀 결사대와 만나기로 하여 갔으나 3월 10일에 식사 후 갑자기 사망.

당시 장례식에 참석했던 미국 성공회 책임자 베커는 김란사의 시신이 검게 변해있었다고 증언했으며, 파리강화회의 참석을 막으려는 일본의 감시와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란사 특별전은 3월까지만 진행이 된다고 합니다.

이번 김란사 특별전은 김란사 일생을 재조명하는 작업으로 26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전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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