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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 조선시대 방어유적, 서귀포 서귀진지

by 해피이즈나우 202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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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 조선시대 방어유적, 서귀포 서귀진지

 

 

제주 올레길 6코스쇠소깍 다리에서 출발해 게우지코지와 제지기오름, 구두미포구, 소천지, 소라의 성, 정방폭포, 서복공원과 서복전시관, 이중섭거리를 지나 서귀진지에 도착했습니다.

 

제주 올레길 6코스 완주(쇠소깍, 제지기오름, 소라의성, 정방폭포, 이중섭거리, 제주올레여행자센터)

 

서귀진지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방어유적으로 3성 9진의 하나이며, 정의현 관할이었습니다.

최초축성은 목사 한승순이 잦은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고자 1439년(세종 21)에 천지연 상류 홍로천 위에 성을 쌓았습니다.

이후 목사 이옥이 조선 선조 23년(1590)에 이곳까지 수로를 파서 물을 끌어들여 저장했고, 남은 물은 주변에서 논농사를 짓도로 했습니다.  

 

서귀진지 풍경을 담았습니다.

 

서귀진지는 탐라십경의 하나라고 하는데요.

둘레는 825척 5치(233m)이고, 높이는 12척(2.8m)이라고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설문은 동과 서에 있었고, 집채는 북성안 중앙에 객사, 좌우로 진사, 무기고, 사랑방, 포주, 창고 등 총 11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서귀진에는 성정군 68명, 목자와 보인 29명 등 100여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귀진지 북쪽의 객사 건물 추정지

2009~2010 1차 발굴 당시 확인된 건물지로 서귀진 객사건물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01년 서귀진성이 폐지되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의 관청으로 사용되다가, 관아 건물은 정의공립보통학교, 서귀공립심상소학교 등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고, 4.3 사건 때에는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성곽을 헐어내어 4.3 성을 쌓는데 이용했습니다.

 

 

이후에는 주거용 건축용도와 밧담으로 이용되어 지금에는 당시의 성담이었던 담들이 '우잣담'과 '성굽담'으로 일부 남아 있습니다.

 

서귀진지 남쪽 건물지 모습

 

서귀진 집수정 및 수로

 

서귀진 집수정은 축성 당시 성에 주둔하는 병사들의 식수용으로 만든 것으로, 정방폭포 상류에 있는 정모시에서 물을 끌여다 쓰기 위해 만든 물길입니다.

식수용 외 남은 물은 논농사를 직도록 했습니다.

 

서귀진 집수정 모습

발굴 당시 바닥이 목조로 조립되어 있었고, 수로는 잡석을 쌓아 만들었습니다.

 

서귀진지 모습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주도 방어유적지인 서귀진지.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어 다소 아쉬움이 남네요.

 

일제강점기와 제주 4.3 사건 등 역사의 풍랑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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